(908)<제자 전택부>|<제33화> 종로 YMCA의 항일 운동 (18)|전택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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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린의 배신>
1913년3월 어느날 이른 아침이었다. 무장 경찰이 YMCA 정문 앞을 삼엄하게 수비하는 가운데 중국인 들장이들이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황성 기독교 청년 회관 간판 중 「황역」 두자를 땅땅 쪼아내는 것이었다. 이런 줄 모르고 출근했던 이명원 등 젊은 직원들은 뜻밖의 이 광경을 보고 황급히 YMCA간부들에게 보고했다. 하나 간부들인들 어찌하랴? 워낙 사전계획대로 거사하는 그네들의 무력 행위인 만큼 모두 일단 잠잠할 수밖에 없었다. 약소 민족의 설움을 안고 통곡했을 뿐 그것을 저지할 수 있는 능력은 없었던 것이다.
또한 그네들은 이런 폭력 행위만 아니라 회원들을 매수하여 YMCA를 점령하려는 흉계를 꾸몄던 것이다.
이미 말한바와 같이 부총무 김린은 새 회관에 입주한 후부터 야심이 동했던 것이다.
특히 합병 직후부터는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즉 그는 외국인 총무를 몰아내고 한국인이 총무가 돼야한다는 명분을 세우고 YMCA를 일본인 새력하에 넣자는 매국 행위를 꾸몄던 것이다. 이것이 그네들의 소위 유신회 운동이다. 김린은 이일을 하는데 있어 다음 네가지 사회 정세를 교묘히 이용했었다.
첫째는 회원들의 외국인 배척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동경 유학생들이 먼저 시작하여 국내에까지 파급된 운동이다. 학생들은 동양 기독자회라는 것을 조직하여 가지고 선교사마저 배척하게 되었다. 둘째는 YMCA의 자립 운동이었다. 신 회관 낙성식 때 윤치호의 발언을 계기로 하여 YMCA를 외국 원조 없이 운영하자는 운동이었다. 이상재는 월급을 안 받아도 좋으니 1만환씩 받는 정부 보조를 중지하자고 다섯번이나 주장했던 것이다. 세째로 일본 조합 교회의 조선인 전도 운동이었다.
그 교회는 창립 25주년 기념 사업으로서 합병 이후 조선인들에게 전도할 것을 결의한 후「와다세」란 일본 신호 교회 목사를 서울에 파송 하여 조합 교회를 창설하는 동시에, 총독부로부터 1년에 몇천환씩 기밀비를 타 쓰면서 전도를 했다. 이것이 곧 YMCA를 점령하기 위한 어용 교회이다. 네째로 1만환씩 받는 정부 보조인데, 이것은 본래 고종의 호의로 주기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YMCA는 이것을 감사하게 받았었다. 하나 일본인들이 차츰 이 돈이 마치 자기네들의 돈 인양 아니꼽게 굴므로 이상재 등 한국인 간부들은 받지 말자고 주장했었다. 그리고 「질레트」 총무도 나중에는 그네들의 흉계를 눈치챈 다음부터는 안 받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김린은 이러한 사정을 교묘히 이용했다. 우선 그는 조합 교회의 교인이 되는 동시에 「와다세」·사일연·유일선·변훈·「아즈마」와 공모하여 어리석은 교인들을 매수하여 가지고 YMCA회원 세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리고 합법적으로 YMCA실권을 잡고 「질레트」총무를 내쫓기로 공작을 했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질레트」의 비밀 보고서를 보면, 『YMCA직원 하나가 총독부 관리로부터 공작금을 받아 가지고 YMCA를 뒤엎을 흉계를 꾸미고 있다는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사회는 그를 파견했습니다. 그는 다른 불평분자들과 같이 유신회라는 것을 조직했습니다. 그 회의 목적은 순전히 YMCA의 외국인 직원을 몰아내고 그 운영권과 재정권을 잡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유신회는 총독부 당국의 정식인가와 총독부 신문의 지지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후 이 유신 회원 6∼7명이 사무실에 와서 나룰 폭력으로 밀어내었습니다. 내가 화가 나서 그들에게 손을 대면 이것을 트집 잡아 경찰에 고발하여 결국 나를 국외로 추방하자는 술책이었습니다. 그네들은 내게 별별 욕설을 다했습니다. 힘으로 대결한다면 그네들이 다 무엇입니까? 한번은 내가 너무 화가 나서 한사람을 문 쪽으로 밀었더니 일부러 땅바닥에 넘어지면서 엄살을 부렸습니다….
그 이튿날 아침 각 신문에는 내가 그자들을 때려 상처를 입혀서 관립 병원에 입원했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그리고 이 신문은 「질레트」 총무는 마땅히 해임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날 아침이었습니다. 나는 조반을 먹고 있으니까 어떤 헌병처럼 생긴 일본 사람 하나가 아주 날카롭고 멋있는 군도 하나를 가지고 와서 날더러 사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네들은 나를 위협하기 위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내가 그런 흉기를 가졌다는 증거를 만들기 위하여 그랬는지는 모르나 별별 것을 다하며 나를 못살게 굴었습니다.』
이상 「질레트」 총무의 비밀 서한 내용은 지면이 없어서 아주 간략하게 소개한 것이다. 결국 그는 서울을 떠나 상해로 가게 되었다. 이사회가 그를 해임한 것도 아니며, 엄격하게 말하면 그가 쫓겨난 것도 아니다.
다만 그가 버티고 있음으로 해서 YMCA가 너무 상처를 입을까봐 그가 자진해서 임시 자리를 뜬것이다.
이사회는 김린을 파면시켰던 것이다. 즉 1913년2월21일 만장일치로 그를 파면 결의했다. 이것은 정말 용감한 행위였다. 총독부와 각 신문은 「질레트」 총무와 「제라인」 (전약슬)회장은 마땅히 해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사회는 도리어 김린을 파면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명원 이인영 등 직원들과 회원들은 밤중에 뛰어다니면서 기별하여 긴급 회원 총회를 열고 김린을 파면한 이사회의 결의를 지지하는 동시에 유신회 일파의 난동 행위를 규탄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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