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 청소년의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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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같은 나이의 다른 친구들은 책가방을 들고 학교로 등교하는 이른 새벽에 가정환경이 여의치 못해서 일터로 출근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이른바 근로 청소년들이다.
뜻이 없어서가 아니라 뜻이 있어도 주위환경 때문에 진학하지 못한 이들의 향학열은 학교에 대한 이상하게 강한 동경심을 갖게 하는 모양이다. 그럴수록 학교가 아닌 일터로 발이 가고 있는 자신에 대한 좌절감도 커갈 수 있다. 그래서 근로 청소년의 21%는 『학교 다니는 애들을 보면 피하게된다』고 중앙청소년 상담실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대답하고 있다. 배우지 못했다, 배우지 못하고 있다하는 것을 의식한다는 것은 틀림없이 괴로운 일일 것이다. 근로 청소년의 27%가 『실력도 없고 기술도 없어 고민』하고 있음을 털어 놓고 있다.
그들은 또 현재의 직업에 만족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장래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근로 청소년의 과반수가 『취미에 맞는 일을 하고 싶다』고 아쉬워하고 있으며, 현재의 직업은 『장래성이 없는 것 같다』고 비관하고 있는 수도 40%에 이르고 있다.
이 같은 근로 청소년들의 불만은 그러나 직접적으로는 그들이 일하고 있는 직장 환경 및 근로 조건에 기인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일을 의논할 사람이 없다』하는 그들의 고독, 『상사로부터 인격을 존중받고 싶다』는 그들의 굴욕감, 『나는 늘 피로하다』고 하소연하고 있는 그들의 과중한 노동 등이 그들의 일상생활의 한 단면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조사에 의하면 근로 청소년들의 하루 평균 근로시간은 10시간25분으로 나타나 있다. 이들의 약 4분의1이 『전보다 몸무게가 많이 줄었다』고 토로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그들의 일이 얼마나 힘에 겨운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우리나라 근로 기준법에는 16세 미만자의 근로시간이 하루 7시간을 초과하지 못하게 되어 있고, 일반 근로자의 경우에도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하고 하루에 8시간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설혹 당사자간에 합의가 이루어졌을 경우에도 1주일에 60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한도가 정해져있다. 만일 특별한 사정이 있어 이 한도를 넘고 근로시간을 연장할 경우에는 보사부의 인가를 받도록 되어있다.
그런데 이 조사에서처럼 근로 청소년들의 평균 근로시간이 하루 10시간25분이라면 6일 1주로 해서 주계 62시간30분이 된다. 그것은 엄연히 근로 기준법이 규정한 근로시간의 한도를 넘고 있다. 그에 대해서 이들 청소년의 작업장에서는 보사부의 합법적인 인가를 얻고 있는 것인지 먼저 감사를 해야할 것이다. 만일 아무 인가도 없이 각종 업체에서 이들 청소년들에게 시간 초과근무를 시키고 있다 한다면 그에 대해서는 적절한 조치가 있어 마땅하다.
한편 근로 기준법에는 18세 미만 자를 상시 30인 이상 사용하는 자는 『이에 대한 교육시설을 해야한다』는 의무 규정이 있다. 이 같은 교육시설을 하지 않을 경우엔, 보사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 그 대신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근로 청소년의 과반수가 『직장에 다니면서 학과나 기술교육을 받고 싶다』는 향학열은 실은 업주의 자비심이 아니라 법의 준수로써 충족시켜야 할 문제인 것이다.
배우고 싶다하는 젊은 「블루·칼리」들의 자발적인 열망은 한국의 산업화를 위해 오히려 환영해야할 일일 것이다.
선진 각 국에서처럼 일하면서 배울 수 있는 정규 학교의 다부제 운영, 통신교육과 야간기술학교의 운영 등, 발달한 사회교육의 수단을 동원하는 방법을 진지하게 연구 해야할 시기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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