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박찬일의 음식잡설] 먹는 장사가 가장 쉽다, 준비된 사람이라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7면

연말연시에 기자는 물론이고 주변 사람으로부터 꼬박꼬박 받는 질문이 있다. 새해에는 어떤 음식이 뜰 것 같아? 이런 내용이다. 내가 이런 쪽으로 제법 예지력(?)이 있는 모양이다. 오뎅바, 수제 햄버거, 불닭, 와플, 일본식 덮밥…. 맞힌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돗자리 깔고 있는 형편이 아니니 비결을 공개하자면 너무도 쉽다. “아직 한국에 시작하지 않은 아이템 중에 프랜차이즈하기 쉬운 것”이 정답이다. 다시 말해서 뭐든 한국에서 한바탕 바람이 불고 갈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 프랜차이즈의 나라다. 일본을 모델 삼아 번졌다. 일본은 정말 프랜차이즈가 많다. 하나의 가게 밑에 지명을 따서 ‘○○점, △△점’이라고 표기하는 게 바로 일본식이다. 그런데 한국이 일본보다 더 심하다. 프랜차이즈의 원조인 일본에서 제과점 기술자들이 한국에 와서 그랬다던가. “왜 한국 제과점은 이름이 다 똑같아요?”

프랜차이즈 열풍의 내막은 슬프다. 사오정·오륙도에다가 청년실업이 그 원인이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쫓겨나와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은 대개 먹는 장사다. 쉽게 생각하는 면도 있다. 주변 지인이 자동차를 사주거나 주택을 구입하지는 않겠지만 음식이야 까짓 한 그릇 팔아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자동차 대리점이나 부동산 중개업소가 나을 수도 있다. 그건 그 가게 주인이 만드는 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동차와 부동산을 가게 주인이 만들지는 않는다. 좀 과장되게 말해서 남이 만든 것이니 중개만 잘하면 된다. 그러나 음식업은 그 가게 주인이 만들어야 한다. 주인의 기술력과 경험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래서 대안으로 프랜차이즈를 한다. 완성된 요리법에 맛으로 검증된 걸 잘 찾으면 된다. 그런데 그런 프랜차이즈는 비싸다. 그래서 가맹비가 싼 쪽으로 쏠리거나 유행하는 아이템을 찾는다. 앞서 거론한 집들 중에 살아남아서 선전하고 있는 곳도 여럿 있지만, 대부분 사라졌다. 유행에 몰입했기 때문이다. 당신이 집을 보러 간다고 치자. 물은 잘 나오는지, 외풍은 심하지 않은지, 근처 학교는 좋은지 수많은 조건을 따진다. 그래도 살다 보면 새로운 결함이 드러난다. 그러나 프랜차이즈가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는 가게인지 꼼꼼히 살피는 것 같지는 않다. 파는 처지에선 장점만을 부각시키는 게 당연하다.

수십 가지 아이템을 저인망식으로 늘어놓고 파는 프랜차이즈가 적지 않다. 당연히 개별 아이템에 충분한 노하우와 사업경험이 없거나 적다. 앞으로 외식시장에 무엇이 유행할지 찾는 것보다는 꾸준히 할 수 있는 아이템을 봐야 한다. 유행의 다른 이름은 잊힌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잊히는 것이 있으므로 새로운 유행이 존재한다.

내 친구는 언젠가 다가올 퇴직에 대비해서 5년 전부터 요리학원에 다니고, 주말이면 지역별 제철 재료 기행에 다녔다. 책과 비디오로 요리를 익혔다. 지난해에 끝내 명예퇴직이 되었지만 그는 오히려 희망에 부풀어 있다. 오래 준비한 것을 선보일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순항하는 인생이라도 누구에게나 조기 퇴직의 암초가 불쑥 솟아오를 수 있다. 먹는 장사가 제일 쉽다고? 그건 준비된 사람에게나 그럴 뿐이다. 프랜차이즈를 고르더라도 준비된 사람이 좋은 물건을 고를 확률이 높다. 

박찬일 음식 칼럼니스트 chanilpark@naver.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