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창을 사이에 두고 20년만에 모자 재회|누범 가중 처벌 관례 깨고 전과 폭력범에 벌금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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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20년 동안이나 멋대로 내버려둔 이 어미에게 죄가 있습니다. 저를 벌해주십시오』라고 눈물로 탄원하는 어머니에게 냉엄한 법도 감격, 전과 2범의 전과자를 가벼이 용서. 20년만에 어머니 품에 안기게 했다.
서울 형사지법 박준서 판사는 6일 술에 취해 사람을 때려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죄로 구속, 기소된 안강수 피고인 (26·전과 2범)에게 『금고 이상의 전과 사실이 있음에도 재판부는 20년만에 만나는 모자가 쇠 철창을 사이에 얼굴을 마주하는 한스러움을 덜어주기 위해 특별한 고려를 했다』고 밝히고 누범자에게 가중 처벌하는 관례를 깨고 벌금 5만원이라는 가벼운 형을 선고했다.
재판부의 이같은 판결이 있자 피고인 석에 서있던 안씨는 끝내 벅찬 감격을 이기지 못해 얼굴을 감싸고 흐느꼈고 방청석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애인 김윤순씨 (25)도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지난달 말 20년만에 처음 구치소에서 아들을 만났던 어머니 민수점씨 (54)는 그동안 아들의 석방을 탄원하러 다니다 쓰러져 법정에 나오지 못했다.
안씨가 어머니 민수점씨 (54)와 헤어진 것은 1953년 6·25가 터지던 해 당시 육군 대위였던 아버지 (안씨는 아버지 이름을 모른다)는 3대 독자인 강수 군 (당시 4세) 등 1남 2녀를 어머니에게 맡기고 전선으로 떠났다. 전쟁이 난지 두달 후인 8월 중순, 아버지가 전투 중 폭사했다는 전사 통지를 받았다.
이때부터 어머니 민씨는 3자녀와 함께 친정과 시댁을 오가며 밥술을 얻어먹었다.
모진 가난과 싸우기에 지친 민씨는 강수 군이 7세 되던 해인 53년 딸들을 식모와 양딸로 보내고 강수 군을 진주시 보육원에 맡긴 뒤 장사길에 나섰다.
약간의 돈을 마련해 2년 뒤 보육원을 찾았을 때 강수 군은 이미 보육원을 탈출한 후였고, 이때부터 모자는 서로의 생사를 모른 채 20년 동안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
부모의 이름도 주소도 모른 채 보육원을 탈출한 강수 군은 부산 등지를 전전하며 껌팔이·구두닦이 등으로 성장했다.
15세 되던 해 안씨는 첫 범죄를 저지르고 말았다. 「너무나 배가 고팠읍니다. 구두 통을 메고 부산 전포동 거리를 걷던 중 부모 손을 잡고 다정히 얘기하며 가는 국민학생을 보았습니다. 나도 모르게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 어느 가게 앞에 머무른 그들은 빵이며 과자 등을 한 보따리 사가지고 갔읍니다. 너무나 부럽고 또 갑자기 공복을 느꼈습니다. 순간 식빵과 캐러멜 등을 한 움큼 쥐어들고 뛰었지요. 절도죄로 소년원에 송치됐읍니다.』
작년 초 안씨는 또다시 절도죄로 징역 1년을 치르고 나왔다. 형을 마치고 나온 안씨는 아련히 기억에 남는 진주시의 보육원과 외가를 찾아 어머니 소식을 수소문했으나 허탕을 치고 지난 5월16일 지방의 K신문사를 찾아가 어머니를 찾는 기사를 냈다.
기사를 읽고 어머니가 달려왔을 때 안씨는 다시 폭행죄로 구속이 된 때였다. 코흘리개로 헤어졌던 안씨를 어머니는 싸늘한 철창을 사이에 두고 만나지 않으면 안되었다.
6일 하오 8시 서울 구치소 문을 나선 안씨는 애인 김양과 함께 어머니가 몸져누워 있는 경남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로 떠났다. <고정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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