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4)강변에 살아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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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시민의 발걸음이 차단되도록 한 강변 관리는 정서생활의 부인이나 마찬가지다. 한강변에「아파트」만 짓고「가드 레일」을 쳐 차만 다닐 수 있게 해 시민들이 바람조차 쐴 수 없게 만든 것은 가뜩이나 숨막히는 도시생활의 숨통을 더욱 죄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우리처럼 공원마저 빈곤한 도시 생활에서 어디로가 정서를 키우라는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여러 번 구주를 가 봤었지만 어느 나라나 수도를 흐르는 강을 서울의 한강처럼 메마르게 해 놓은 데는 결코 찾아올 수 없었다.「파리」의「세느」,「런던」의「템즈」,「베를린」의 「라인」,「이집트」의「나일」등 어느 수도의 강이든 그 아름다운 단장이 시민의 발걸음을 부르며 정서를 안겨 주게 돼 있다. 물론 이들 강변에도 둑엔 한강처럼 강변도로나 고속도로가 나 있기는 하다. 그러나「센」의 경우 강안 수면 가까이 산책로를 낸 뒤 나무를 심고「벤치」를 놓아 숲 속에서 물을 즐길 수 있게 돼있다.
「파리지엥」들이 여기서「아베크」를 하고 시를 읊으며 내일을 설계하는 모습을 아마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영국 의사당이 있는「템즈」강변도 강 쪽으로 산책로와「벤치」시설을 갖춰 놓고 있어 주부들이 꼬마들을 자전거에 싣고 거니는 모습은 정겹기 그지없었다.
「라인」강변도「센」와 마찬가지. 수면 가까이 나 있는 산책로는 공원을 방불케 하는 단장이며 시민들은 강둑 고속도로를 육교나 지하도로 건너 이 강변 공원에서 땀을 식힌다.
그런데 우리의 한강은 어떤가. 겨우 김포가도 한구석에만 산책로와「벤치」가 있을 뿐, 전 강둑을 자동차에만 내주고 있다. 시내의 공원을 이용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말을 할 수 있겠지만 분수로 아무리 단장을 해도 산수가 겸한 강변만 못한 것이다.
구주는 원래 강변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도시를 설계했고 우리는 명동과 종로를 중심으로 도시를 짜, 자연 한강이 소외돼 와서 오늘 같은 꼴불견을 낳았겠지만 앞으로 남 서울이 건설되면 그때는 한강이 서울의 중심이 될 것이 아닌가.
지금이라도 강변을 말끔히 단장, 서울의 한강을 시민에게 돌려줘야 할 것이다.
김봉규<삼성출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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