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까지 자기 손으로|복덕방 출입 잦은 북한 대표 주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남북한 대표단이 같은 「월도프·아스토리아·호텔」에 투숙하는 통에 본의 아니게 상대방에게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사례가 심심치않게 일어난다.
외부에서 걸려 오는 전화의 대부분이 북한의 김준걸을 찾는데 그냥 「미스터·김」이라고만 찾을 때에는 종종 40층의 김용식 장관 방으로 연결된다.

<미스터·김 전화 촌극>
이렇게 잘못 걸려오는 전화를 동해서 알려진 사실 하나는 북한 사람들이 요즘 그들의 대표부 겸 숙소로 삼을 「빌딩」을 물색하느라고 「맨해턴」의 복덕방을 뻔질나게 드나든다는 것.
대개는 복덕방 측에서 몸이 달아 「김」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붙들고 상당한 저자세로 자기가 소개하는 건물의 장점을 역설하더라고.
10일전에는 동경에서도 그런 전화가 왔다. 그러나 동경의 교환수가 이번에는 김준걸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나와서 전화는 평양 사람들이든 1180호실로 돌려졌다.
그 뒤부터 길 잃은 전화는 딱 끊겼지만 김준걸이라는 북한의 참사관이 주요 업무를 관장하는 실력자라는 것은 확인되었다.
북한 사람들은 아직 승용차를 사지 않고 「캐딜랙·프리트우드」를 두대 전세 내 미국인운전사를 두고 타고 다닌다. 그중 한대의 번호는 1172-639.

<경호원 그림자처럼>
북한 사람들은 어디서나 그렇듯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다닌다. 심지어 권민준이 화장실을 갈 때도 문밖에서 한사람이 지킨다는데 「유엔·로비」에서는 대개 어깨가 딱 벌어진 최라는 경호원이 그림자처럼 붙어 다닌다. 그들의 숙소 「월도프·아스토리아·호텔」방은 7개. 이발까지 자기 손으로 한다는 얘기.
박동진 주「유엔」 대사와 북한의 김준걸은 구면. 지난 5월 「제네바」에서 열린 WHO (세계 보건 기구) 총회 때 첫 대면을 했다고.
어느 날 휴게 시간에 박 대사가 「로비」의 의자에 혼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는데 마침 북한 사람임에 틀림없는 사람이 옆자리에 와서 앉았다.
박 대사가 북한에서 왔느냐고 묻자 그자는 못들은 척하고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영어로 『당신은 일본 사람입니까?』하고 엉뚱한 질문을 해왔다. 박 대사는 우리 나라 말로 나는 한국 사람이라고 대답하자 그는 난처한 표정으로 북한에서 왔다고 말하더라는 것. 그가 바로 김준걸이었는데 박 대사가 『그럼 소련 말을 잘 하겠구먼?』하고 묻자 김은 『좀 합니다. 밥벌이는 할 정도지요』라고 대답하더라고.

<소어는 밥벌이 정도>
그런 구면이지만 김준걸은 「유엔·로비」에서 박 대사를 보면 못 본체하고 지나친다. 그러면서도 김은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박 대사를 호칭할 때는 『박 대사』라는 공식 호칭을 쓴다.
2일의 총회 연설에서 교가 소련을 집중 난타한데 이어 3일에는 중공·소련이 한바탕 격돌을 했다.
운영위가 소련의 10% 군사비 감축 안을 총회의 의제로 채택하자 중공의 비화가 느닷없이 『소련 안은 엉터리 군축의 사기극이고 사실은 소련 정부의 군비 확장 음모』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소련 대표 「말리크」는 의사 진행 발언을 얻어 이미 결정된 일을 가지고 중공 대표가 중상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나무라고 할 말 있으면 총회 토의 때 하라고 점잖게 타일러 황화를 침묵케 했다. 그로써 3일의 2차 설전은 소련의 판정승.

<로비서보면 못 본 체>
앞으로도 중국어의 「유엔」 실무 용어 포함 제의·각종 군축 안 등 이들 두 공산 거인들의 격돌 기회가 한 두 번이 아니겠지만 한국 문제를 둘러싸고 이들 두 큰 등치들이 어떻게 임할지가 특히 관심을 모으고 있다.
중공 창립 24주년 기념 「칵테일·파티」에도 3백50여명의 각국 대표들이 초치 받아 한때를 즐겼으나 유독 소련만은 눈에 띄지 않았다.

<『바보 새끼』 욕설도>
3일 총회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바루디」 대표와 「칠레」의 「다빌라」 대표간에 밀고 밀치는 난장판이 벌어졌다. 문제는 소련의 「말리크」가 「칠레」 공산당 사무장 「코르발란」이란 상원 의원이 군사 지도자들 손에 처형 당 할 운명이라는 UPI 보도를 인용, 「유엔」이 개입하자고 주장한데서 발단했다.
소련과 「칠레」 대표간에 입씨름이 벌어지자 「유엔」의 터줏대감이요, 약방의 감초 격인 「바루디」가 싸움 말린 답시고 등단, 「다빌라」와 충돌하여 『바보 새끼』라는 욕설까지 들었다.
결국 「다빌라」의 사과로 끝났지만 한동안 분위기는 희극과 비극을 범벅 해놓은 것 같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