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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거슨 떠나자 다리 풀린 맨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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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맨유 제국’이 몰락하고 있다. 맨유는 모예스 신임 감독 체제에서 벌써 6패를 당했다. 6일 맨체스터의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스완지시티와의 FA컵 64강에서도 졌다. 경기 도중 넘어지는 맨유 공격수 하비에르 에르난데스(가운데)의 모습이 애처롭다. [맨체스터 AP=뉴시스]
알렉스 퍼거슨(左), 데이비드 모예스(右)

지난 2일 영국 맨체스터의 신문 가판대. 여러 매체에 데이비드 모예스(51) 감독의 잔뜩 찌푸린 얼굴이 실려 있다. 모예스가 이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는 전날 토트넘에 1-2로 패해 프리미어리그 7위로 추락했다. 바로 옆 『나의 자서전(My Autobiography)』이라는 책 표지에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알렉스 퍼거슨(73) 전 맨유 감독과 대조적이다.

 선덜랜드-애스턴 빌라전이 열린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의 기자실부터 맨체스터의 일식집까지 “맨유가 어디까지 추락하느냐”는 영국인의 단골 대화 주제가 됐다. 지난해 12월 맨유의 부진을 안타까워하던 아프리카 케냐의 한 팬은 맨유가 뉴캐슬에 패한 직후 7층에서 뛰어내렸다. 맨유 팬들은 홈 구장 올드트래퍼드에서 “오늘 우리는 어떻게 질까? 0-1일까? 0-2일까?”라는 자조 섞인 노래를 부른다.

 박지성(33·에인트호번)이 2005년부터 8년간 뛴 맨유는 ‘최강팀’과 동의어였다. 지난 시즌에는 잉글랜드 역대 최다인 20번째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올 시즌 맨유는 6일 스완지시티와 FA컵 64강에서 1-2로 져 조기 탈락했다. 정규리그에서도 승점34(10승4무6패)로 7위. 선두 아스널과 승점 11점 차다. 1992년 프리미어리그 출범 후 처음으로 빅4에서 밀려나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출전도 못할 위기다.

 영국 일간지 익스프레스는 지난 5일 모예스의 맨유가 고전하는 10가지 이유를 꼽았다. 결정적인 건 퍼거슨 전 감독의 부재다. 27년간 맨유에서 38차례 우승을 이뤄냈던 퍼거슨 감독은 지난해 5월 은퇴했다. 2002년 하위권이던 에버턴을 맡아 2004~2005시즌 4위까지 끌어올린 모예스 감독이 지휘봉을 넘겨받았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중소 구단에서는 잘했지만 빅클럽을 맡자 갈팡질팡하고 있다.

 맨유는 지난여름 이적 시장에서도 필요한 선수를 영입하지 못했다. 세스크 파브레가스(27·바르셀로나)와 메수트 외질(26·아스널) 등에게 러브콜을 보냈지만 실패했다. 마지막 날 에버턴의 마루앙 펠라이니(27)를 간신히 데려오는 데 그쳤다. 퍼거슨 감독의 전화 한 통에 마음이 움직이던 수퍼스타들은 이제 없다.

 시즌이 시작되자 모예스는 주전을 9명이나 바꾸는 등 과도한 로테이션으로 신뢰를 잃어버렸다. 게다가 중앙 수비 퍼디낸드(36)와 비디치(33)는 노쇠 기미가 확연하다. 나니(28)와 영(29), 가가와 신지(25)의 성장은 기대를 밑돈다. 판페르시·루니 등 주축 선수가 부상을 당한 것도 결과적으로 감독의 책임이다. 퍼거슨 감독 시절과 달리 단조로운 측면 일변도의 공격만 하고 있다. 경기 종료 15분 전 패배를 무승부로, 무승부를 승리로 바꾸던 투지도 사라졌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퍼거슨 감독을 보좌했던 코치진을 물갈이한 게 치명타였다”고 분석했다. 뮬레스틴 풀럼 감독은 맨유 코치 시절 경기별 세부전술 훈련을 완벽히 짜 선수들의 신망을 받았다. 퍼거슨 감독 곁에는 스티브 매클라렌(53) 전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 카를로스 케이로스(51) 이란 대표팀 감독 등 훌륭한 수석코치가 늘 있었다.

 맨유와 6년 계약한 모예스 감독에게 팀을 재건할 시간을 줘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92년부터 20년간 맨유에서 뛴 게리 네빌(39·은퇴)은 “퍼거슨 감독도 부임 초기 3~4년간 강한 압박을 받았다”며 모예스 감독을 변호했다. 퍼거슨 감독도 고별사에서 “이제 팬이 해야 할 일은 우리의 새 감독을 믿고 지지하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맨유는 1월 겨울 이적시장에서 전력 보강을 노리고 있다. 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도움왕’ 코케(22)와 아틀레틱 빌바오의 ‘플레이메이커’ 안데르 에레라(25) 등을 잡아오려고 한다. 맨유의 살아있는 전설 라이언 긱스(41)는 “변명하지 않겠다. 우리는 지난해 챔피언이었고 다시 그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자신했다. 긱스의 말처럼 모예스의 맨유가 반전 드라마를 쓸 수 있을까.

맨체스터(영국)=박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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