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옌데」의 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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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칠레」의「아옌데」정권은 마침내 무너지고 말았다.「아옌데」는 자유·민주 선거에 의해 최초로 「마르크시스트」정권을 수립했던 자이다. 따라서 남미에서의『사회주의의 실험』은 파국으로 끝이 난 셈이다.
외신에 따르면「아옌데」자신도 그의 정권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일설에는 1천명이 넘는 사상자를 냈다고 한다.「쿠데타」세력인 군·경의 서슬이 얼마나 등등한지 눈에 선하다.
「아옌데」정권의 한계는 역시 군부세력에 있었다.
작년 10월 운송업자의「스트라이크」가 절정에 달했을 때, 그는 해결의 실마리를「군」에서 찾으려 했다. 그는 부통령 격인 내무상, 그리고 공공사업상 등 요직을 군부에 내준 일까지 있었다.
그러나「칠레」의 군대는 40년 동안이나 정치적 중립을 지켜온 전통을 갖고 있다. 「쿠데타」의 음모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번번이 실패로 끝났었다. 『「칠레」의 군대는「와인(포도주)을 마셨을 때만 강하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이다. 군사「쿠데타」가 일상다반사인 남미에서는 하나의 예외를 기록했었다.
「아옌데」는 정권을 잡자마자 미국계 자본의 5대 동광을 국유화하고 역시 미국계 기업 ITT의 자회사, 국내의 민간은행, 해운회사 등 91개의 대기업을 접수했다. 1천5백개 소나 되는 대농장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급격한 생산체제의 변화는 사회의 생산력을 저하시켰다.
한편 미국은「칠레」를 경제적으로 봉쇄했다.「칠레」는 외화수입의 80%를 동 수출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동광의 봉쇄는「칠레」의 외화보유고를 결정적으로 축나게 했다.
따라서 농장에서는 식량의 생산이 걷잡을 수 없이 저하되고, 외화의 부족은 소비물자의 수입을 막았다. IMF의 보고에 따르면 72년도의 생계비는 집권 전에 비해 163%가 상승했다. 최근엔 더욱 악화, 300%를 기록했다고 전한다. 중산층이나 서민의 불만이 높아질 것은 당연하다.
중립을 지키던 군부도「아옌데」정권의 이와 같은 혼란에 회의를 갖기 시작했다.
「아옌데」는 이런 눈치를 채고 고급장교들에게「세단」차를 나누어주는가 하면, 고급주택을 지어 주는 등 추파를 던지기까지 했었다. 영국의 한 신문은『호랑이 등에 앉은「아옌데」』라고 비웃은 일도 있었다.「아옌데」는 최근 경제적 불안을 푸는 열쇠를 군부세력에 또 다시 맡기는 타협안을 내놓았었다.
그러나 이런 열쇠로는 경제적 파탄을 풀 수 없었다. 근원적으로 미국의 경제 봉쇄정책이「아옌데」에겐 목의 가시처럼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보수파세력은 결과적으로「아옌데」정권에 도전할「모티브」를 찾게 되었다. 군부와 이들의 야합은 은연중에 가능했을 것이다. 「산티아고」에선 비로소 총성이 울리고,「아옌데」는 쓰러지고 말았다.
하지만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무력에 의한 정권교체는 언제나 음산한 분위기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쿠데타」가 만능의 힘을 갖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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