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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위기] ③ 해외 농산물 수입 유통과 농장개발도 걸음마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식량위기> ③해외 농산물 수입 유통과 농장개발도 걸음마

지난해 11월 4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의 롱비치 항(港). 한국으로 수출되는 각종 물품이 실린 18 t과 23t(적재량)들이 컨테이너가 겹겹이 쌓여 있었다. 일부 컨테이너의 내용물은 콩자반ㆍ된장 등이다. 각종 콩 식품의 원료로 사용돼 한국인의 식탁에 오를 미국산 콩이다.

미국대두협회 이형석 박사는 “식품 원료용 미국산 콩은 미국 내에서 컨테이너에 담긴 채 화물열차로 롱비치까지 운송된다”며 “롱비치 항에서 컨테이너선(船)에 옮겨진 콩은 대개 인천항에서 하역된다”고 설명했다.

한진해운은 2000년대부터 롱비치 항에서 컨테이너에 담긴 곡물들을 운송해왔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단순 운송에서 한걸음 나아가 곡물의 구매ㆍ운송ㆍ유통까지 담당하는 사업을 준비 중이지만 아직 롱비치 항 공사가 시작되진 않았다”고 말했다.

소량의 옥수수나 콩·밀은 컨테이너로 운반이 가능하지만 대규모의 물량 수송엔 엘리베이터(건조 저장시설)가 필수 시설이다. 미국에서 옥수수가 주로 재배되는 일리노이주ㆍ아이오와주 등 콘(corn, 옥수수)벨트 지역은 콩의 주산지와 거의 겹친다. 콩과 옥수수를 매년 번갈아 심는 농장이 많아서다. 대량 생산된 미국산 수출용 콩ㆍ옥수수는 농가의 저장빈(창고)→산지(local) 엘리베이터→강변(river) 엘리베이터→바지선 운송→수출(export) 엘리베이터로 이어지는 운송과정을 거쳐 5만5000t급 대형 선박(벌크선)에 실린다. 미국 태평양 쪽인 시애틀ㆍ포틀랜드 혹은 중남부의 뉴올리언스(미시시피주)에서 선적돼 파나마 운하를 거쳐 인천항에 들어온다. 식량 유통과 조달에서 현지 엘리베이터의 확보가 중요한 것은 이래서다.

해외 곡물 조달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아직 이렇다 할 수단을 갖지 못하고 있다. 한국판 ‘카길’(Cargill, 세계 4대 곡물 메이저의 하나)을 표방하며 추진해온 해외곡물 조달 회사마저 지난해 사업을 접었다. 사업을 주도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내부적으로 ‘사업실패’ 결론을 내리고 이를 지난해 10월 국회에 보고했다. 예산당국도 사업에 책정된 예산을 ‘불용’ 처리(회수)하고 2014년도 예산에서 관련 항목을 삭제했다.

당초 aT는 미국 현지 운송시설인 산지ㆍ강변ㆍ수출 엘리베이터를 확보해 곡물 유통망을 구축하고 2015년부터 연간 215만t의 곡물을 조달한다는 계획이었다.

해외곡물조달 회사는 2008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 순방 후 식량안보를 언급한 뒤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10년 aT가 해외곡물전담기구로 지정됐고 삼성물산·한진·STX 등 국내 대기업과 공동투자로 ‘aT 그레인 컴퍼니'(aT Grain Company)를 설립했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 시카고의 곡물 거래 관련자는 “콧대 높은 미국 곡물회사 CEO들이 aT 그레인 측 관련자를 모두 만나 준 것으로 알고 있다”며 “보수적 가족 기업 중심인 곡물 메이저들에게 aT 그레인이 제대로 어필하지 못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의 텃세는 예상된 것”이며 “일본의 젠노(全農) 그레인이 1970년대에 미국에 진출한 뒤 엘리베이터를 확보하고 최근에야 자리를 잡은 것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산 곡물을 바가지 쓰지 않고 들여오려면 ‘개그콘서트’에 등장하는 ‘로비스트’를 시카고 국제곡물거래소(CBOT)에 파견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식량부족 국가인 이집트·필리핀도 채택하지 않은 일괄현물구매방식으로 곡물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시카고에 거주하는 곡물거래 관련자는 “일본ㆍ중국 심지어 아프리카 국가들도 선물(先物)시장을 통해 곡물을 구입한다”며 “후진적인 입찰 방식인 일괄현물구매방식으로 곡물의 대부분을 사는 ‘메이저’ 국가는 한국이 유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선물거래는 현물가격의 변동위험을 선물시장을 통해 회피하는 거래 방식이다. 반면 일괄현물거래는 구입자가 비싸게 사면 비싸게 팔고, 싸게 사면 싸게 파는 등 모든 위험을 소비자에게 전적으로 떠안기는 구매 방식이다.

해외 곡물을 돈 주고 사오는 것이 식량위기에 대한 현실적인 대처라면 해외농장에서 직접 작물을 길러 국내로 반입하는 것은 더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대안이다.

한국인의 해외 농장 개발은 1960년대에 시작됐다. 남미 아르헨티나ㆍ파라과이로 농업 이민을 떠났으나 대부분 실패했다.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다. 현재 한국인은 세계 24개국에 농장을 소유하고 있다. 농장 개발을 위해 해외 진출한 기업은 2012년 106곳이다. 2009년 35곳에 비해 급증했다. 한국농어촌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21만8168t의 밀ㆍ콩ㆍ옥수수 등이 해외 농장에서 생산됐다. 그러나 해외농장에서 수확된 곡물의 극히 일부만 국내에 반입되고 있다. 해외에서 생산돼 국내 반입된 곡물(사료 포함)의 양은 2012년 1만539t에 불과한 실정이다. 지난해 반입량은 1만5000여t(잠정)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가 연간 1600만t의 곡물이 수입하는 것을 감안하면 갈 길이 아직 멀다.

우리 기업들이 해외농장 개발을 위해 최근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는 나라는 러시아 연해주와 캄보디아다.

한국농어촌공사 이은수 해외농업개발지원센터장은 “연해주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사회주의가 붕괴하면서 빈 농장이 많은데다 장차 통일돼 철도가 연결되면 물류비용 부담이 대폭 줄어든다는 것이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캄보디아는 인구(1400만 명)가 적어 현지 생산한 식량을 한국에 무리 없이 가져올 수 있다. 토지 비용이 ㏊(헥타르, 약 3000평)당 10∼100달러에 불과하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혔다.

사료 제조업체인 ‘코지드’는 2008년 캄보디아 파일린에서 캄보디아인 50여 명을 고용했다. 옥수수를 사서 말린 뒤 해외에 되파는 유통 사업을 하기 위해서다. 일종의 산지 엘리베이터를 마련한 셈이다. 지난해 코지드를 거쳐 간 옥수수 양은 2만5000t에 달한다.

해외에 농장을 세우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다.

파키스탄 펀잡에서 곡물을 키우기 위해 4년 전부터 현지를 15번 방문한 ‘서정쿠킹’ 이재호 대표는 재배 대상을 두 차례나 바꿨다. 이 대표는 “처음엔 밀을 키워보려고 했으나 밀은 파키스탄인의 주식이어서 현지에 흉년이 들면 한국에 반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며 “2011년 흉년이 들자 파키스탄 정부가 밀의 해외 반출을 불허한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대신 옥수수를 키우기로 했다. 그러나 옥수수의 생산ㆍ유통은 카길 등 곡물 메이저와 힘겨운 경쟁을 벌여야 하는 데다 운송비용이 많이 들 것으로 예상돼 포기했다. 이 대표는 4년간의 도전 끝에 파키스탄 지주로부터 토지 50년간 무상 사용권(이익의 20% 제공 조건)을 받아 작물인 알팔파 씨앗을 뿌린 뒤 올 4월엔 첫 수확할 꿈에 부풀어 있다.

서정 쿠깅 서정옥 회장은 “2015년 봄엔 한국에 알팔파를 들여올 계획"이며 “현지법과 제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고 회상했다.

이은수 센터장은 “해외 농장을 활성화하려면 현재 연간 300여억 원(저리 융자) 규모인 해외농업 개발 사업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해외 농장을 통해 반입되는 농산물을 관세를 대폭 낮추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현재는 해외농장의 매출이 대부분 현지에서 이뤄지므로 현지 유통 시스템을 강화할 필요도 있다.

미국 시카고·로스앤젤레스=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캄보디아=전승우 기자, 러시아 연해주=이상화 기자

◇본 기사는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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