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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고 또 찍었다, 그런데 남은 건 무엇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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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왼쪽은 『도덕경』, 오른쪽은 『논어』를 찍은 사진이다. 작품 ‘도덕경’의 경우 파란 바탕에 금으로 적은 판본을 한 자 한 자 찍어, 5290장의 사진을 한데 중첩했다. “합치면 다 사라질 것을 왜 굳이 힘들게 한 장 한 장 찍었나” 묻자 그는 “허망하고 덧없을 수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있음은 없음 때문이 아닌가”라고 답했다. [사진 313 아트프로젝트]

사진가 김아타(58)가 돌아왔다. 국내 개인전으로는 2008년 서울 태평로 로댕갤러리(지금의 삼성미술관 플라토) 전시 이후 6년 만이다. 9일부터 서울 도산대로의 화랑 313 아트프로젝트에서 ‘RE-ATTA’를 연다. 대표작 ‘온에어(On-Air)’ 프로젝트의 완결편 ‘인달라’ 시리즈를 선보인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를 모토로 파르테논 신전도, 마오쩌둥(‘아이스 모놀로그’ 시리즈)도, 뉴욕을 메운 자동차와 사람들도 사진 속에서 사라지게 만든(‘8시간’ 시리즈) 그가 “나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고 천명하는 전시다. 파주 출판단지 내 작업실에서 3일 김아타를 만났다.

 “그동안 맹렬히 작업했다”는 말로 그는 ‘생존 신고’를 대신했다. “공자가 만년에 천하를 주유했듯, 뉴욕·모스크바·델리·도쿄·프라하 등 세계 12개 도시를 다니며 그곳의 건물·인물, 그리고 작은 흔적들까지도 무수히 찍었다”고 했다. 그렇게 찍은 사진을 도시별로 1만 컷씩 골라 중첩시켜 하나로 만들었다. 결과는 12점의 회색 평면. “들인 공력에 비해 허망하고 공허한 결과다. 그러나 ‘없앰’으로써 역설적으로 ‘있음’을 드러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인달라’는 ‘인드라넷’과 같은 말로, 우주의 모든 것이 그물처럼 얽혀 관계한다는 의미다. 오랜 역사의 세계 도시 뿐 아니라 『논어』 『도덕경』 『반야심경』 등 경전의 한 자 한 자도, 잭슨 폴록, 반 고흐, 모딜리아니 등 서구 미술사 대가들의 작품 한 점 한 점도, 모두 하나로 포갰다. 『논어』의 1만5817자를 하나로 모은 불그스름한 평면이, 『도덕경』 5290자를 모은 노랗고 파란 화면이 이들 경전의 존재를 대신하는 ‘뜬구름’이 됐다.

김아타

 올해는 그를 좀 더 자주 볼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2년간 313 아트프로젝트에서만 세 번의 전시를 열 예정이다. 주목되는 것은 올 9월의 전시다. 김아타 작품의 새로운 면모를 선보인다. 카메라를 내던지고 만든 ‘자연 드로잉’ 시리즈다. 노자의 고향인 중국 허난성, 원폭의 상흔이 남은 일본 히로시마, 한국의 비무장지대(DMZ)와 거제의 바닷속 등에 빈 캔버스를 세우고 묻는 프로젝트다. 벌레알에, 포탄에, 땅과 바다에 해진 캔버스들은 세척·살균·염색 처리를 거쳐 자연을 그대로 찍은 ‘사진’이 된다.

 “10년은 진행하리라 마음 먹었으니 어쩌면 내 생애 마지막 시리즈가 될 수도 있겠다”며 그는 “나는 예술이 인류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인도 부다가야에서 버틴 캔버스는 그렇게 험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싯다르타가 부처가 됐구나’ 싶었죠. 그와 같은 자연의 흔적들을 사진 찍듯 캔버스에 담을 겁니다. 나아가 우주에도 캔버스를 설치하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니 책 만드는 이들이 들어가 있는 파주의 회색 건물들이, 경기도 북단임을 알리는 철책들이, 멀리 눈 덮인 산들이 새삼 낯설었다. 일상을 달리 보게 하는 것, 그게 예술이 가진 힘일 터다. 전시는 다음달 7일까지. 02-3446-3137. 

파주=권근영 기자

◆김아타=1956년 경남 거제 태생. 2004년 뉴욕의 사진 전문 출판사인 ‘아퍼처(Aperture)’에서 한국인 최초로 사진집을 냈다. 2006년 뉴욕의 사진미술관인 국제사진센터(ICP)에서 동양인 최초로 개인전을 열었다.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 초청 특별전에선 ‘온-에어’ 시리즈의 ‘로마’를 구성하는 1만장의 사진을 흩뿌리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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