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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성 감염병 한반도 북상 주의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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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구온난화가 한반도의 감염병 지도를 바꾸고 있다. 진드기와 모기가 옮기는 열대성 질환에 걸리는 환자가 점점 늘고 있다. 동남아 등 따뜻한 지역에서 주로 발생하던 감염병이 한국에도 토착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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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질병관리본부의 잠정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결핵과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을 제외한 법정 감염병(55개) 환자 수는 7만7215명으로 집계됐다. 전년의 5만1520명에 비해 50% 이상 늘어난 수치다. 2010년과 비교하면 3년 새 환자가 2배 가까이 늘었다. 이 같은 증가 중 특히 눈에 띄는 것이 진드기와 모기를 통해 옮겨지는 감염병이다.

 ‘가을철 불청객’으로 불리는 쓰쓰가무시병은 감염자가 전년에 비해 약 1.2배(1만477명), 사망자는 2.7배(24명)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발열·발한·두통 등을 동반하는 쓰쓰가무시병은 야외활동을 하다 진드기 유충에 물릴 경우 발병한다. 지난해 처음으로 국내에서 발병 보고된 진드기 매개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 환자는 35명으로 이 중 7명이 목숨을 잃었다.

 진드기의 증식은 기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더운 날이 많아지면 개체 수가 늘어난다. 질병관리본부 배근량 감염병감시과장은 “1990년대만 해도 영호남 지역에서만 주로 발견되던 진드기가 2005년엔 경기도까지 분포했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며 “진드기가 북상하면서 발병 지역도 북상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해외 유입 감염병으로 분류됐던 뎅기열도 지난해 급증했다. 전년 대비 76% 늘어난 263명이 이 병에 걸렸다. 뎅기열은 뎅기모기(흰줄숲모기)에게 물려 감염되며 감기와 유사한 증상을 보인다. 하지만 심한 경우 출혈 등 합병증과 함께 사망할 수도 있는 치명적인 열대·아열대 질병이다. 전 세계에서 매년 5000만∼1억 명이 뎅기열에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아직 예방백신이 없 다.

 제주대 의대 이근화 교수팀은 지난해 7월 제주도 7개 지역에서 채집한 감염 매개 모기 중 뎅기열 매개체인 흰줄숲모기를 발견했다. 지금까지는 해외 감염병 매개 모기가 들어와도 기후가 맞지 않아 죽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해외 유입 모기가 상당 기간 생존하는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질병관리본부 배 과장은 “온난화가 더 진행되면 뎅기열 모기 등이 육지에서도 발견되고 이 모기가 바이러스 매개체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진드기는 모기보다 훨씬 방제가 힘들기 때문에 농사일을 할 때 장화와 토시 같은 보호구를 착용하고 등산할 때는 정해진 등산로로 다녀 매개 진드기에게 노출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진드기와 모기로 인한 감염병 외에는 수두(48.6%)와 유행성 이하선염(볼거리·22.5%)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볼거리 환자는 1만7386명으로 전년에 비해 1.3배 늘었다. 전문가들은 백신의 효과가 제한적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생후 12개월이 지나 접종하는 수두 백신과 생후 12개월 이후, 4~6세에 두 번 접종하는 볼거리 백신의 경우 접종 예방률이 80~85% 정도다. 비슷한 시기 접종하는 홍역 백신의 예방률이 95%인 데 비해 낮다. 서울대병원 이환종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한 해 태어나는 아이들에게 모두 예방 접종을 하더라도 20%가량이 병에 걸릴 수 있다는 얘기”라며 “20%에 해당하는 아이들이 몇 년에 걸쳐 누적되다 한 번에 유행하는 사이클을 보이는데 이때 갑자기 감염병 환자가 많아진다”고 설명했다.

정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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