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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큰 꿈 없이 가장 평범하게 살고 싶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56호 11면

장미정씨는 “딸을 위해 이제는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으면 한다”며 뒷모습을 촬영해 달라고 요청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어도 영화는 영화다.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의 실제 주인공 장미정씨

‘집으로 가는 길’은 한국의 일상으로 돌아온 송정연의 활짝 웃는 가족사진으로 행복하게 마무리됐다. 하지만 실제 ‘장미정 사건’의 주인공의 삶은 영화의 엔딩 자막이 올라간 뒤에도 계속된다.

장미정(45)씨가 한국에 돌아온 지도 8년. 그가 사건과 그 이후 살아온 이야기를 직접 글로 풀었다. 최근 펴낸 책 『잃어버린 날들』(한권의책)을 통해서다. 그가 원석인 줄 알았던 코카인을 소지한 채 프랑스 오를리 공항에서 체포되고, 이역만리에서 감옥 생활을 하다 귀국한 사건의 줄거리는 영화와 책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그가 책을 낸 이유는 사건 자체보다 그로 인해 바뀐 삶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26일 만난 그는 “영화는 배우 전도연이 연기한 허구의 인물, 송정연의 이야기다. 내 이야기를 내 입으로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책은 영화에서 무능력하게만 그려졌던 남편,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게 도움을 준 사람들, 귀국 후 적응하는 데 겪은 어려움 등 영화가 자세히 다루지 않은 것들을 담고 있다. 장씨는 “한국 오면 길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 것 같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사람도 만날 수 없었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고 했다. 사소하게는 식탐이 생겼고, 외출할 수도 없었다. 교도소에서 날마다 수면제를 먹었던 탓에 잠을 이룰 수도 없었다. 봉지 쌀을 사다 먹어야 할 만큼 형편은 어려웠고, 보고 싶었던 딸은 다시 시누이에게 맡겨야만 했다. 그는 “적응기간이 길었다”고 짧게 말했지만, 그의 ‘잃어버린 시간’은 대서양 외딴섬에서 보낸 756일보다 훨씬 길었다.

무엇보다 더 이상 과거의 ‘선량한 시민’이 아닌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두 딸이 영문도 모르고 상처를 받기도 했다. ‘쟤네 엄마 감옥 갔다 왔으니까 놀지 마…’라는 얘기를 딸들이 듣는 것이다. 장씨는 “내 얘기를 남을 통해 듣게 하고 싶지 않다. 감옥에서 얼마나 고생스러웠는지 말고, 무엇 때문에 엄마가 멀리 가게 됐는지 말해 주고 싶다. 책을 낸 이유 중 하나다”라고 했다.

그는 아픈 기억을 굳이 또 들추는 것이 오해를 사지 않을까 걱정도 했다.

“네가 잘못해 놓고 왜 국가 탓 하느냐는 사람이 있다. 내가 잘했다는 게 아니다. 형편이 어렵다고 사람들이 다 나쁜 짓을 하지는 않는데, 나는 400만원이란 돈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그것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죗값을 치렀다. 다만 빨리 돌아올 수 있었는데 너무 긴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장씨는 “아직 아프지만 일부러 떨쳐버리려 하진 않는다”고 했다. 사건 발생 10년 만에야 비로소 꺼낼 수 있게 된 말이다. 어떤 영화보다도 극적인 경험을 한 그는 “이젠 큰 꿈 없이 가장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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