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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롄더, 중국 최초 인체 해부로 ‘폐 페스트’ 발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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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호 29면

방역본부 앞의 방역요원들. 1911년 1월,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 얼굴에 착용한 마스크를 당시 사람들은 우롄더 마스크라고 불렀다. [사진 김명호]

1911년 2월 중순, 대청제국의 섭정왕 짜이펑(載灃·재풍)은 외무부 우승(右丞, 지금의 차관) 스자오지(施肇基·시조기)가 제출한 국고지출 요청서를 꼼꼼히 읽어 내려갔다. 우롄더(吳連德·오연덕)의 이름을 발견하자 서류를 접었다. 더 볼 필요도 없었다. 국고 10만 냥을 지원하라고 내무부에 지시했다.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355>

중국 역사상 최초의 국제학술회의가 4월 3일부터 28일까지 선양에서 열렸다. 6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동북 지역의 페스트 방역이 주제였다. 12개 국가의 전염병 연구자 33명이 출석했다. 회의는 26일간 계속됐다. 마지막 날 ‘만국 페스트연구회’를 결성한 참석자들은 ‘폐 페스트’라는 새로운 질병을 발견한 우롄더를 회장으로 선출했다.

‘The Times’의 베이징특파원 모리슨(George Ernest Morrison. 훗날 총통 위안스카이의 고문)이 런던의 본사에 타전했다. 신문을 본 영국인들은 “우리가 세계 최고의 전염병 퇴치 전문가를 배출했다”며 열광했다. 우롄더의 모교인 케임브리지대학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10여 년 후, 개화사상가 량치차오(梁啓超·양계초)도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과학이 중국에 수입된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학자의 자격으로 세계가 우러러보는 사람은 우롄더가 유일하다.”

출국당하는 러시아 방역단. 청나라 정부는 개인 자격으로 온 사람들만 입국을 허락했다.

2003년, 광저우에서 발생한 조류독감이 전국을 강타했다. 중국 전인대 부위원장을 겸하던 과학원 원사 한치더(韓啓德·한계덕)가 TV에 등장해 페스트와 콜레라 등 전염병의 역사를 강의했다. 90여 년 전, 외국의 도움 없이 중국인의 힘으로 악성 페스트를 퇴치한 우롄더의 업적을 소개하며 국민을 안심시켰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며 의아해 하는 사람이 많았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우롄더의 행적을 쫓는 연구자들이 출현했다. 우롄더를 생각하며 사스를 이겨냈다는 중년 부인의 기고가 눈길을 끌었다. “모국에 돌아온 우롄더는 부인을 저세상으로 보낸 다음 날, 페스트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동북으로 떠났다. 그 후 30여 년간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했다. 마스크도 처음 전파시켰다. 총통에 취임한 위안스카이의 고위직 제의를 거절했고, 장제스도 위생부장을 시키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전염병이 발생한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중국을 점령한 일본 군부가 손을 내밀자 모국을 뒤로 했다. 말레이시아의 시골 의사로 돌아가 쓸쓸한 여생을 마친 우롄더를 생각하면 뭐 이런 놈의 나라가 다 있고,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었는지 생각하면 할수록 복장이 터진다. 자신의 명예를 소중히 여겼지만 명예욕은 없는 사람이었다. 슈바이처의 평전도 읽어봤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을 비교하면 안 된다고 배웠지만 우롄더와 비교하기엔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오래전에 읽어서 상세하진 않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다.

다시 1910년 겨울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얼빈에 도착한 우롄더는 4륜 마차를 타고 중국인 밀집지역을 둘러봤다. 버려진 시신들이 눈 덮인 광야에 널려 있었다. 발병 원인을 조사하겠다며 제 발로 달려온 백인 의사들은 우롄더에게 멸시의 눈초리를 날렸다. 밤이 되자 광활한 동북 하늘에 귀신들의 노랫소리가 울려퍼지는 것 같았다.

관리들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우롄더의 보좌관이 일기를 남겼다. “배가 붕어처럼 튀어나온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갔다. 환자들에게 손톱만큼의 믿음도 줄 것 같지 않았다. 날씨도 추웠지만 옷을 어찌나 껴입었는지 웃음부터 나왔다. 우롄더가 옆구리를 치는 바람에 웃음을 멈췄다.”

도착 3일 후, 우롄더는 갓 사망한 일본 여인의 중국인 남편을 찾아갔다. 시신 해부를 허락해 달라고 간청했다. 지하실에서 중국 최초의 인체 해부를 시작했다. 기침이나 재채기, 혹은 이야기할 때 공기 속에 흩어져 나온 병원체를 들이마시면 감염되는 폐 페스트라고 단정했다. 쥐나 쥐벼룩과는 상관이 없었다. 병원체는 산속 바위틈이나 평지에 굴을 파고 사는 마르모트였다.

다른 것도 그렇지만, 악성 전염병도 모든 원인은 인간이었다. 몇 년 전부터 마르모트 가죽이 피혁시장에서 인기를 끌었다. 값이 치솟자 너도나도 사냥에 뛰어들었다. 이놈들은 병든 마르모트를 근거지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습관이 있었다. 전문 사냥꾼들은 병들어서 동작이 느린 마르모트는 잡지 않았지만 어설픈 사냥꾼들은 그 반대였다. 허기지면 고기를 먹기도 했다. 원인을 확인한 우롄더는 군인과 경찰을 동원해 도시를 봉쇄하고 환자들을 격리시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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