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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가 달리기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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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
이규연 기자 중앙일보 탐사기획국장
이규연
논설위원

‘뉴욕에선 24시간 버스가 다닙니다. 서울도 같은 메트로폴리탄입니다. 밤늦게 일하는 사람도 많고요. 서울에도 심야버스가 다니면 안 될까요. 24시간 살아있는 도시를 만드는 겁니다.’

 지난해 이맘때, 서울시 인터넷참여마당에 시민 Z씨가 올린 글이다. 1000만 명이 사는 국제도시에서 자정이 좀 지나면 대중교통이 끊기는 불편함을 해소해 달라는 제안이었다. 사실 이런 민원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시도 2007년과 2011년에 심야버스 도입을 검토한 바 있다. 시민편익이 크다는 건 알지만 이해관계의 벽을 번번이 넘지 못한 사안이었다.

 서울시 버스운행과는 해묵은 과제를 이번에는 꼭 해결해 보기로 한다. 담당자는 노선팀의 이종운(46) 주무관. 그는 심야전용버스 도입에 따른 우려를 네 가지로 정리한다. 심야 택시영업 위축, 졸음운전 사고, 취객 난동, 버스업계 운영난 등이다. 문제별로 보완책·대응논리를 세운다. 그리고 2개 노선에서 시범운영을 시작한다. 시민 호응은 폭발적이었다. 야근이 잦은 회사원, 취업 준비에 밤샘하는 대학생, 새벽까지 일하는 대리기사 등이 수호기사를 자임한다. 그 힘을 받아 이 주무관은 본격 운행을 준비한다. 9개 노선에 45대의 심야전용버스를 투입하려 한다.

 하지만 택시기사들의 집단반발이 일어난다. “개인택시 다 죽인다.” 기사들은 연일 1인 시위를 벌인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SNS 계정에도 비난의 글이 쏟아진다. 시청에 쳐들어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노선팀은 택시업계와 다섯 차례 간담회를 갖는다. 마침 택시요금 인상이 논의 중이었다. 이를 고리로 심야버스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심야버스 승객은 택시를 이용하기 힘든 영세서민층이다” “택시기사 자신과 가족도 수혜자가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택시 반발이 잦아들 무렵, 다른 복병이 출몰한다. 버스업계의 외면이었다. “이용객이 적으면 적자가 날 것”이라며 노선 신청을 하지 않은 것이다. 이번에는 버스업계와 세 차례 간담회를 연다. “황금노선을 찾아낼 테니 걱정 말라” “버스회사 평가에 참여도를 반영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주무관이 노하우를 바탕으로 9개 황금노선을 그려나가는 사이 정보시스템담당관실은 기발한 발상을 한다. 담당자는 김영완(40) 주무관이었다. KT의 통화량데이터와 시의 교통데이터를 합쳐보기로 한다. 우선 서울 전역을 1252개로 나눈 뒤 자정~새벽 5시 통화량 30억 건을 구역별로 분석한다. 통화 집중지역을 따라 노선을 그린다. 이른바 빅데이터 분석을 한 것이다. 김·이 두 주무관이 머리를 맞댔을 때 황금노선은 완성된다. 시민 참여도 중요했다. 공모전을 열어 시민에게 직접 버스 이름과 홍보 방법을 묻는다. 24시간 밤길을 밝히는 올빼미라는 브랜드, 서강대 학생들이 만든 버스홍보영상은 이렇게 탄생한다.

 지난해 9월, 올빼미는 본격 운행에 들어간다. 100일 동안 63만 명을 실어나른다. 승객이 많다 보니 버스 경영난은 기우가 됐다. 심야버스정류장을 중심으로 단거리 택시승객도 생겨났다. 음주 난동과 졸음 사고는 한 건도 신고되지 않았다. 이 주무관은 (웃으면서) “새벽에도 문의·요청이 들어와 제가 잠을 설치는 것 빼고는 올빼미는 잘 달리고 있다”고 했다.

 올빼미의 성공요인은 네 가지였다. 이해관계보다 공익 우선, 적절하고 끈질긴 설득, 빅데이터를 활용한 사회문제 해결, 단계별 시민참여 유도였다. 어디 올빼미뿐이랴. 이 네 가지야말로 모든 정책·사업 추진의 황금률이 아닐까. 올빼미를 달리게 한 공무원들은 연말에 상복이 터졌다. 빅데이터 활용사례는 대통령상을, 노선팀은 서울혁신상 대상을 각각 받았다. 지난해 추진한 33개 서울시정에 대한 평가에서도 1위에 오른다. 올빼미팀에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고대한다. 올해에는 더 많은 올빼미가 훨훨 날기를….

이규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