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소쿠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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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년 내내 우리 살림에 쓰여지고 있는 소쿠리는 그러나 여름철의 그릇으로 한결 빛이 난다.
무더운 여름 논에 아낙네의 손에 들려온 보리밥 담긴 대소쿠리는 땀에 젖은 일손을 식혀주는 청량제며, 대청마루에 많은 식구를 모아놓고 한바구니 가득 담겨진 과일을 나눠먹는 일이나, 매미 우는 철 수박과 참외를 담아 깊은 우물에 식히는 풍경, 이 모든 것이 여름과 소쿠리의 이야기다.
우리의 소쿠리는 재료에 따라 대소쿠리(죽비) 등비(등나무·싸리나무) 버들고리 등으로 구별된다. 대소쿠리는 주로 전라도 남원·순창·담양·낙안(현재의 보성군) 등지에서 생산되었으며 그 짜임새가 특히 발달하여 유명하다. 가늘고 섬세하게 짜여진 것과 거친 듯 소박한 멋을 내는 소쿠리 등 같은 짜임새로도 색다른 멋을 내는 것들이다.
소쿠리의 쓰임새는 그 크기와 모양의 다양함에 못지 않게 넓다. 부엌에서 밥을 담거나 국수를 건져내고 밥상을 덮고, 물건을 말리는 채반의 역할에서부터 시집갈 때 혼수를 담아 가는 데에, 그리고 술병이나 항아리의 덮개로도 쓰여졌었다. 고려 때 호조판서 이성은 항상 소쿠리에 경서를 넣고 다녀 유명했다.
시집갈 때 갖고가는 소쿠리는 하얀 등나무 제품으로 겉에는 5색의 화려한 채색그림을 놓고 안에는 비단을 한 벌 붙인 정교한 것으로 특히 고려 때 유행했던 소쿠리다. 소쿠리 중의 가장 귀중품으로 꼽히는 것이다.
등나무 소쿠리는 중국산 등나무로 만든 것이 고급으로 가늘고 길며 껍질을 베끼면 어느 것보다 색이 흰 것이 특색이다.
소쿠리의 쓰임새가 이렇게 다양함에 따라 신라시대에는 이 소쿠리를 만들어 공급하는 사비국이라는 관청을 따로 두기도 했다.
근래에 와서 우리의 소쿠리는 점점 장식적인 물건으로 물러나는 듯 하다. 외국관광객들에겐 한국의 민예품으로 조그만 소쿠리 장식품이 팔리고 있으며 간혹 양식의 빵 접시로 이 소쿠리가 수출되기도 한다. <윤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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