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스웨덴 TV와의 녹음 인터뷰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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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문=귀하는 소련 사회제도의 개선 가능성에 회의를 품고 있다. 그런데도 귀하는 활발히 비판 성명을 내고 있는데….
▲사하로프=인간은 언제나 이상을 선명하게 해 둘 필요가 있다. 외견상 이 이상을 구현할 직접적인 방법이 없더라도 이를 줄기차게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 이상이 없다면 희망도 있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은 전망도 흐리고 암흑 속에서 막다른 골목에 몰리게 될 것이다.

<인간의 침묵은 불가능>
인간은 침묵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전혀 희망이 없더라도 말은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신문보도의 예에 비추어 우리가 더 이상 기대할게 없다는 게 드러나고 있다.
▲문=소련의 사회주의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게 귀하의 의견이다. 그렇다면 전체 사회제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개선점을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사하로프=대답하기 좀 어려운 문제이다. 하나의 사회를 완전히 변혁시킨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언제나 과거와 미래의 관련성은 있어야 한다. 변화는 단계적으로 이루어져야지 그렇지 않으면 소련에서처럼 미증유의 파괴가 다시 되풀이 될 것이다.
▲문=그럼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사하로프=무엇을 해야 하다니? 현재와 같은 체제로서는 이 제도에 내재하는 활력조차 활용할 수 없을 뿐더러 가능성도 매우 희박하다. 필요한 것은 사회의 사상적인 혼동을 정화하는 일이다.
▲문=어떤 방법으로?
▲사하로프=본질적으로 반민주적인 사상적 구조는 국가에 대해 비극을 뜻한다. 외계로부터의 고립과 외국 여행과 귀국 권리의 포기는 우리의 생활을 비참하게 하고있다. 개인적이거나 민족적인 이유로 소련을 떠나는 사람들에게도 헤어날 수 없는 비극이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도 마음대로 떠나거나 귀국할 수 없는 나라라는 사실이 비극이다. 이는 개방된 체제에서와는 전혀 다른 폐쇄적인 획일성만을 가져다준다.

<당 통한 국가독점 안돼>
▲문=그 이외에 또 어떤 문제가 있는가?
▲사하로프=개인 창의가 효과적으로 계발될 수 있는 경우에도 광범위한 국가적 사회주의화가 이를 저해하고 있다. 개인의 창의와 자유가 제한 받게 되면 생활규범에 매우 부정적인 효과를 초래할 뿐더러 생활자체를 지루하고 우울하게 만든다.
소지구조, 직장선택, 교육분야에서의 개인 의지 제한도 마찬가지이다. 극도로 고도화된 국가의 획일적 구조가 완화된다면 모든 사태는 호전될 것이다.
당을 통한 국가통치의 독점은 이미 한계에 이르러 지도층에서조차 정부가 비능률적으로 되고 있는 사태를 막기 힘들다는 생각을 갖게 할 정도가 되고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바람직할 것인가는 물론 좀 더 많은 개방과 국가 기관 활동에 대한 철저한 통찰이 필요하다. 일당제도는 너무 비현실적인 것 같다. 사회주의적 경제질서 아래서도 복수정당제도는 가능하다.
후보가 너무 많이 나오지 않는 보통 선거가 필요하다. 간단히 말해 획일적인 폐쇄에서 오는 결합을 메울 수 있는 일련의 조처가 필요하다.
신문도 개혁되어야 한다. 현재의 신문은 기사의 가치판단을 크게 흐리도록 동일화 되어있다. 어떤 기사가 신문에 한줄 나더라도 관계됐던 사람만이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모호하며 오히려 국민생활의 참다운 모습을 왜곡하고 있다.

<지식인의 활동을 탄압>
지식인들의 활동은 비이성적인 방법으로 탄압되고 있다. 지식인들은 물질적으로도 불우한 처지에 놓여 육체 노동자들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모든 여건은 악화되어 경제적으로 같은 발전단계에 있는 서방국가의 지식인들에 비해 훨씬 낮은 생활수준에 머물러있다.
지식인들의 경제적인 곤궁은 아울러 사상적인 압제를 뜻하며 일반적으로 반지성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교직자 같은 많은 교육을 필요로 하는 직업은 응분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반지성적인 풍토는 또한 지식인들로 하여금 편협한 직업적인 전문화의 길로 도피하도록 하거나 직장과 자택에서의 이중생활의 길로 몰아 넣는다. 즉 이들은 직장과 자기 집에서 다른 것을 「사고」하여 이 이중의 분열된 생각은 조소를 낳고 도덕적으로나 창조적인 면에 파멸적인 효과를 빚게 한다.
인문 과학자들은 기술자들보다 훨씬 못한 처지에 놓여있다.
학자들은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는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
문학이란 것은 예를 들면 회색적 공식적 의례적으로 간단히 말해 지루할 뿐이다.

<소련정부 비판용 겁 안내>
▲문=올해도 귀하는 매우 활발히 정부비판을 해 왔는데 귀하의 건강이나 자유에 대해 두려움을 가져본 일이 있는가?
▲사하로프=별로 그런 일은 없다. 자기자신에 대해 개인적으로 걱정해본 일은 없다. 내가 겁을 내지 않는 것은 나의 성격적 특성과 또 내 자신이 문제에 겁을 내지 않아도 좋을 만한 사회적 위치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나 자신보다는 내 가족이나 아내의 친척들에 대한 압력이 걱정된다. 그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내게는 가장 괴로운 일이다.

<슈피겔지서><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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