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연예] 하이! 메뚜기 아저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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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윈터(Winter), 윈터." (30초 후) "오! 스프링(Spring), 스프링." 지난 11일 서울 우면동 EBS 스튜디오. 익살스런 표정의 외국인이 쉬지 않고 옷을 갈아 입는다.

겹쳐 입은 옷을 벗을 때마다 계절이 겨울에서 봄으로, 봄에서 여름으로 이동한다. 과장된 몸짓과 장난기 섞인 목소리, 여기에 놀랄 정도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얼굴 근육. 결국 스태프들까지 쿡쿡 웃음을 참지 못한다.

"오버하지 말아요"라는 담당 PD의 부탁을 받고 나왔지만, 어느새 자신의 끼를 주체하지 못하는 이 남자의 이름은 매튜 리드먼(29.대개 매튜로 통함)이다.

"제가 담담하게 '아이 앰 해피'(I am happy)라고 하면 얼마나 재미없겠어요? 그런데 이렇게 손을 높이 올리고, 눈은 크게 뜨고, 입까지 벌리면서 말하면 쉽게 이해되지 않겠어요?"

영국인 매튜는 EBS의 인기 어린이 프로그램인 '딩동댕 유치원'(오전 8시10분)의 명물이다. 월요일에서 수요일까지 '하이! 에브리원'(Hi! Everyone)이란 영어 코너를 진행 중인데, 어린이들 사이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여기서 그는 매일 하나의 주제를 정해 영어로만 뜻을 전달한다. 동물 목소리를 흉내내거나 다양한 춤을 추는 건 기본. 혼신의 힘을 다해 코믹하고 아기자기한 동작을 보여주는 그를 아이들은 발음이 비슷한 "메뚜기 아저씨"라고 부르며 열광한다.

포털 사이트 다음(daum)엔 팬클럽도 생겼다. 그를 좋아하는 아이들과, 덩달아 그를 좋아하게 된 엄마들이 주회원이다.

"제가 연예계 스타는 아니지만 엄마들은 어디서나 저를 알아보세요. 무엇보다 선생님 비슷한 이미지로 저를 생각해 주셔서 좋아요. 저도 아이들에게 모범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가 표정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이유가 있다. 그는 영국 버밍엄 홀 대학에서 희곡을 전공했다. 정확히 말해 교육연극이다. 기본 연기 외에 팬터마임.광대 연기도 익혔다. 이때 쌓은 내공이 한국에서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처음엔 적응하기 어려웠어요. 연극에서의 연기와 TV연기는 다르더라고요. 개인적으로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러자 어느새 재미있어지더라고요. 요즘엔 신이 나서 오버하는 게 문제일 정도로요."

1996년 그는 전주에서 영어 강사를 하던 누나를 만나기 위해 한국에 왔다. 두달 동안 전국을 누비고 영국으로 돌아갔지만 눈 앞에 한국이 자꾸만 아른거렸다. 결국 이듬해 다시 한국행을 선택했다.

99년 그는 오디션을 거쳐 EBS에 들어 왔다. 그리고 2001년 봄 '딩동댕 유치원'의 고정 코너를 맡으면서 인기 가도에 본격 시동이 걸렸다. 지난해 상반기 비자문제로 그가 방송에 나오지 못하자 방송사에는 "왜 매튜가 없느냐"는 항의가 잇따랐다. 시청자들의 열망에 힘입어 매튜는 지난해 말 '하이…'로 복귀했다.

정현숙 어린이 팀장은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행동이 장점"이라고 그를 평가한다. 영어를 표정으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장점은 어린이들을 사랑한다는 점이다.

"전 탤런트가 아니에요. 아이들이 너무 좋아요. 제가 가진 많은 걸 주고 싶어요. 어른들요? 복잡해요."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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