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하야" … 철도파업, 정권 퇴진 투쟁으로 변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29일 철도노조 김명환 위원장이 피신해 있는 서울 정동 민주노총 입구에 대통령 호칭이 빠진 현수막이 걸려 있다. 28일 민주노총 집회 참가자들은 ‘박근혜 하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오종택 기자]

“우리는 박근혜 정권의 독재를 보았습니다. 정부가 아닌 정부, 대통령이 아닌 대통령에 맞서 투쟁합시다.”

 28일 오후 3시 서울시청 앞 광장. 철도파업을 지지하기 위한 민주노총의 1차 총파업 결의대회가 열렸다. 경찰 추산 2만3000명, 민주노총 추산 10만 명이 광장과 주변 도로를 빼곡히 채웠다. 이날 집회에선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구호가 자주 등장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박근혜 하야’ ‘박근혜 아웃’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국민을 군홧발로 짓밟은 정부는 반드시 단죄를 받을 것이며 노동자가 폭력 정권, 민심 불복 정권을 직위 해제할 것을 선언한다’고 적힌 철도노조의 홍보물도 곳곳에 뿌려졌다. 한 여성 참가자는 ‘이명박 수사 박근혜 퇴진’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경찰 차 앞에서 침묵 시위를 하기도 했다.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날 연단에 올라 “결국 퇴진하는 것은 박근혜가 될 것”이라면서 “대통령이 아닌 대통령에 맞서 전 조직은 일상 업무를 줄이고 투쟁 태세를 갖춰 달라”고 주문했다. 민주노총 본부에 은신하고 있는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도 화상 생중계를 통해 “수서 KTX 자회사의 면허 발급은 국민적 염원을 무시한 대국민 선전포고로 결코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차량 기지·역사·발매 시스템 하나 없는 등 아무 준비가 되지 않은 종이 회사에 사업 면허를 발급한 것은 전례가 없는 졸속 행정”이라면서 “면허 취소를 안 하면 해를 넘기는 중단 없는 총파업 투쟁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 위원장 등 집회 참가자들은 이날 발언에서 박 대통령을 지칭할 때 ‘대통령’ 호칭을 대부분 생략했다.

 이날 집회에선 시위대 5000여 명이 ‘박근혜 하야’ 등을 외치며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을 시도하다 경찰과 충돌을 빚었다. 일부 시위대는 경찰차를 흔드는 등 공무 집행을 방해한 혐의로 현장에서 연행되기도 했다.

 수서발 KTX 민영화 반대를 이유로 시작된 철도파업이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정치 파업으로 변질되고 있다. 애초에 철도노조 측이 파업 명분으로 내세웠던 민영화 문제보다 반정부 투쟁으로 쟁점이 옮겨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민주노총은 투쟁 수위를 더 높인다는 방침이다. 31일과 다음달 3일 잔업·특근을 거부하는 투쟁을 예고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 취임 1주년이 되는 2월 25일에 맞춰 ‘정권 퇴진을 위한 상경 투쟁’을 계획하고 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애초 노사 문제로 시작한 철도파업 사태가 예상치 못한 정부의 강경 대응으로 약화될 위기에 놓이자 정권 전체를 비판하는 것으로 초점을 옮기고 있다”면서 “이명박정부 초기 권력 누수를 야기했던 2008년 광우병 사태와 비슷한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해석했다.

 노조 측이 파업 가담자들의 업무 복귀가 늘면서 파업 동력이 약해지자 정치 쟁점화로 반전을 노리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9일 낮 12시 기준으로 코레일 업무 복귀자는 2194명(24.9%)이다. 최연혜 코레일 사장이 ‘복귀 최후 통첩’을 한 26일 이전(13.3%)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

 경찰은 철도노조 지도부 검거에 주력하고 있다. 28일 민주노총 집회에 참가하려던 철도노조 대구기관차 승무사업소 소속 간부 황모(46)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이 불법 파업 주도 혐의로 체포 영장을 발부받은 철도노조 간부는 29일까지 34명으로 늘었다. 황씨를 포함한 3명이 검거·구속됐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이날 대검 참모부서장 및 공안라인 관계자들과 회의를 갖고 철도노조 지도부에 대한 체포영장의 조속한 집행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지난 28일 오후 10시쯤 코레일 노조원 70여 명이 머무른 강원도 춘천시 한 유스호스텔에서 파업 관련 수배자가 있는지 확인하려는 경찰 80여 명과 노조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노조 측은 “경찰이 영장 없이 왔다”며 진입을 막았다. 유스호스텔에는 수배자가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29일 새벽에 일단 물러났다. 그 뒤 노조원 중 일부가 복귀할 뜻을 비쳤다며 코레일 사측이 현장에 도착해 대화를 시도했고, 경찰은 코레일 노사 충돌 같은 사태에 대비해 현장 주변을 지켰다. 코레일 노조원들은 이 날 “27일 자정까지 복귀하라”는 사측 최후 통첩과 관련해 토론을 하러 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글=이유정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