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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웠던 김광석 … 거기, 함께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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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준우승을 차지한 최승열씨. 현재 김광석 노래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 출연하고 있다. [사진 JTBC]

가객(歌客) 김광석이 세상을 떠난 지 17년이 지났지만, 세상은 그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방송 전부터 ‘산 자’와 ‘죽은 자’의 대결로 화제가 됐던 JTBC ‘히든 싱어2-김광석 편’의 우승자는 고 김광석이었다. 고인이 된 주인공과 다섯 모창자가 펼치는 세기의 대결에 시청률은 급상승했다. 6.35%(닐슨, 수도권 유료)로, 동 시간대 방영한 KBS2 ‘인간의 조건(6.3%)’을 앞섰다.

 김광석 편은 방영되기 전부터 여러 우려를 낳았다. 가수가 무대에 등장하지 못하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그의 노래 대다수가 아날로그 방식으로 녹음돼 이를 디지털 음원으로 복원시키는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1991년 미국에서 일어난 ‘기적’이 제작진에게 힘이 됐다. 재즈 가수 나탈리 콜은 작고한 전설의 재즈 가수이자, 그의 아버지인 냇 킹 콜의 목소리를 디지털 기술로 복원해 만든 듀엣곡 ‘언포겟터블(Unforgettable)’을 발표했다. 콜은 이 노래로 이듬해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곡’ ‘올해의 레코드’와 같은 상을 휩쓸었다.

 제작진은 냇 킹 콜처럼 김광석의 목소리를 복원하기 위해 1여 년의 시행착오를 거쳤다. 유족 측과 협의해 릴 테이프로 녹음된 곡을 음원과 목소리 따로 디지털 녹음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이미 디지털화된 곡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나의 노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잊혀지는 것’ 등 4곡 뿐이었다.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 디지털 복원 자체가 불가능한 곡도 있었다. 어떤 곡의 경우 녹음된 릴테이프를 재생할 수 있는 장비 자체가 없었다.

 조승욱 PD는 “우여곡절 끝에 ‘먼지가 되어’ ‘일어나’ 서른 즈음에‘ ‘바람이 불어오는 곳’ 등 총 4곡을 추가로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그는 “흑백시대 필름 영화를 디지털 복원해서 색 보정을 하듯 아날로그 테이프에 있던 반주·목소리의 손상된 부분을 깨끗이 만지는 작업도 거쳤다”고 설명했다.

 녹화 당일 타이밍도 중요했다. 원조가수가 다섯 도전자와 함께 통 안에서 한 소절씩 노래를 부르는 대결을 만들기 위해서다. 제작진은 전체 반주를 틀어놓고, 순서에 맞게 김광석의 목소리를 틀었다. 제 때에 잘 트는 것도 중요해, 한 달 전부터 현장 리허설을 했다.

 보통 모창자가 참석하는 리허설은 녹화 당일 한 차례 하는 것에서 그쳤지만, 이번 편은 달랐다. 이달 첫째 주에 있었던 가수 김윤아편 녹화 날에도 김광석 모창자 다섯 명이 녹화 현장에서 리허설을 했다. 조홍경(보이스펙트 원장) 보컬 트레이너는 “현장 라이브가 아닌, 완벽하게 녹음된 음원과 승부를 겨뤄야 한다는 점에서 모창자들이 특히 힘들었다. 평소보다 배로 연습했다”고 말했다.

 김광석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울지도 고민거리였다. 조 PD는 “‘히든 싱어’ 특성상 원조가수가 주인공인데, 김광석 편은 마치 주인공 없이 영화 찍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제작진은 이런저런 논의 끝에 그의 자리를 굳이 채우지 않기로 했다. 원조가수와 모창자가 들어가서 노래를 부르는 부스 중, 김광석의 부스는 비운 채로 뒀다. 대신 주옥 같은 김광석의 노래로 무대를 채웠다.

 이날 패널로 참석한 배우 박건형은 “오늘 기적을 본 것 같다. 모두가 한 사람을 그토록 그리워하면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방송의 파장도 컸다. 이날 준우승을 차지한 뮤지컬 배우 최승열씨가 출연하는 김광석 노래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온라인 예매 사이트 뮤지컬 부문 예매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김광석 50주년 기념 뮤지컬인 ‘디셈버’였다.

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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