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배구 코트의 포청천' 김건태 … 떠납니다, 이제 편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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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마음이 가볍죠. 허허허.”

 29일 프로배구 V리그 우리카드-한국전력 경기가 열린 충남 아산 이순신체육관 심판실은 평소와 달리 사람들로 북적였다. ‘코트의 포청천’으로 불린 김건태(58) 심판위원이 주심으로 나서는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이다.

 김 위원은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장비를 챙기고 있었다. 수십 년간 써서 닳아 버린 토스 코인과 치아로 깨문 흔적이 역력한 휘슬에는 세월의 무게가 느껴졌다. 김 위원은 “한 경기에 250번은 분다. 늘 호루라기를 물고 있다 보니 뻐드렁니가 다 됐다. 선수나 감독도 힘들지만 심판도 늘 마음 졸이는 직업이다. 짐을 덜어 편해졌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1m90㎝인 김 심판은 현역 시절 센터로 활약했다. 남들보다 늦은 고교 2학년 때 배구를 시작했지만 빠르게 실력을 쌓아 국가대표로도 발탁됐다. 하지만 오른팔 대동맥이 막히는 희귀병 때문에 선수 생활은 짧게 끝났다. 김 위원은 1985년 선배의 권유를 받고 심판으로 배구계에 돌아왔다.

 ‘심판’ 김건태는 승승장구했다. 90년 국제심판이 됐고, 98년부터 2010년까지 국내 유일의 국제배구연맹(FIVB) 심판으로 활동했다. FIVB 심판은 국제심판 중에서도 10여 명의 베테랑에게만 주어지는 자리다. 그 덕분에 김 위원은 세계 최고 팀을 가리는 월드리그 결승에서 4번이나 심판을 봤다. 2010년 국제심판(만 55세 정년)에서 물러난 김 위원은 국내 대회에서도 만 58세인 정년을 채워 코트를 떠나게 됐다.

 김 위원은 프로배구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다. 그는 심판위원장이 된 뒤 비디오 판독 제도를 도입했다. 심판에게 비디오 판독은 달갑지 않은 장치다. 판정이 뒤집히면 심판에 대한 불신이 생기고 권위가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정확한 판정을 위해 세계 최초로 비디오 판독 도입을 결정했다. 최근에는 FIVB가 비디오 판독을 검토하고 있다.

 자신만의 노하우도 있다. 눈으로 도저히 쫓기 어려운 터치아웃의 경우 선수들의 표정이나 행동을 보고 귀신같이 눈치채기도 한다. 원활한 경기 흐름을 위해 6명의 심판이 모이는 합의 판정을 지양하려는 그만의 원칙도 있다.

 덤덤하던 그의 목소리는 처우 이야기가 나오자 처음으로 높아졌다. 프로배구는 2006년 전임심판제를 도입했지만 처우가 열악하다. 4대 보험 혜택도 받지 못한다. “대기업들이 수익의 몇 %를 연구에 투자하듯 심판들을 위한 투자도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더 많은 후배가 심판에 대한 긍지를 갖고 열심히 하지 않겠습니까.”

 은퇴식을 치렀지만 김 위원의 배구 인생은 진행형이다. 아시아배구연맹 심판위원으로 심판 배정과 평가 업무 등을 할 예정이다. 잠시 중단했던 해설위원직도 다시 맡는다.

 이날 아산 경기에서는 우리카드가 20점을 올린 루니의 활약을 앞세워 한국전력을 3-0으로 눌렀다. 천안에서는 현대캐피탈이 러시앤캐시에 3-1 역전승을 거뒀다. 여자부 GS칼텍스는 현대건설을 3-0으로 제압했다.

아산=김효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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