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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민영화가 뭐 어때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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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철호
수석논설위원

중국 관광객이 한국에서 가장 많이 사가는 제품은 화장품이다. 2위는 무엇일까. 바로 담배다. 전매청이 꽉 잡고 있는 중국에 비해 한국산 담배의 맛과 품질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KT&G는 민영화(2002년)와 담배시장 개방(1988년)이란 두 개의 쓰나미가 덮친 기업이다. 지금은 어떨까? 끄떡없이 잘나가고 있다. 점유율 62%로 국내 시장을 안정적으로 방어하면서 세계 5위의 담배업체로 올라섰다. 사업 다각화에도 성공했다. 공기업 시절 매출액의 90%가 담배였으나 지금은 70% 수준으로 낮아졌다.

 KT&G는 공기업일 때 직원 수가 1만2000여 명에 달했다. 민영화된 지금은 불과 4500명이다. 직원을 60% 이상 줄이고도 오히려 매출액은 4조원, 영업이익은 1조원으로 늘어난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비용 개념이 없던 공기업 시절엔 엄청난 잉여인력을 끌어안고 있었다는 의미다. 공기업 노조원들 사이에 민영화되면 다 죽어난다는 괴담도 거짓말이다. KT&G의 평균근속 기간은 16년, 평균 연봉은 6700만원이나 된다.

 KT&G는 다국적 업체들과 피 터지는 경쟁을 벌이면서 공기업 체질부터 벗어던졌다. 야생 본능과 근육질 몸통을 되찾은 것이다. 우선 품질부터 세계 최고 수준으로 확 끌어올렸다. 더 이상 KT&G는 국내 독점시장에 안주하지 않는다. 지난해 국내 판매량(553억 개비)에 버금가는 451억 개비의 담배를 수출했다. 민영화된 이후 낙하산 인사도 완전히 사라졌다. 사외이사들이 병풍 역할을 하면서 내부 발탁을 통해 안정적인 독립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코레일 사태의 최대 희생자는 ‘민영화’일지 모른다. ‘성은 민, 이름은 영화’라는 조롱 대상으로 전락했다. 철도노조와 정부조차 민영화를 나쁜 개념으로 몰고 갔다. 그렇다면 민영화의 실패 사례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석유공사는 SK로, 부실 덩어리 공기업인 한국중공업은 두산중공업으로 재탄생했다. 누가 포스코·KT의 민영화를 실패라 하겠는가. 적어도 국내에서 ‘나쁜 민영화’의 기억은 없다.

 민영화 괴담의 단골인 볼리비아의 수도 사례와 영국의 철도는 매우 희귀한 케이스다. 조금만 눈을 크게 뜨면 해외에도 훨씬 많은 성공 사례들이 널려 있다. 같은 철도 민영화라도 일본과 독일은 성공한 쪽이다. 이들 국가의 철도업계는 만성적인 적자에서 민영화 이후 전체적인 흑자로 바뀌었다. 철도 요금이 치솟지도 않았다. 좀 더 근사한 사례는 독일의 도이치 포스트다. 공기업이던 이 회사는 민영화된 이후 해외로 나섰다. 갈고 닦은 우편배달 실력을 밑천 삼아 미국의 DHL 등을 인수해 세계 최고의 물류·유통기업으로 우뚝 올라섰다.

 코레일 정선선의 38.7㎞ 구간은 주변 경치가 그림 같다. 51년 전 석탄 운반을 위해 건설된 노선이다. 지금은 하루 두 번 통근열차만 왕복할 뿐이다. 그나마 마을버스와 군내버스에 손님을 빼앗겨 텅 빈 채로 달리기 일쑤다. 코레일이 정선선에서 얻는 운임은 연간 8900만원인 반면 한 해 유지비용만 16억8000만원이다. 이런 적자들이 누적돼 지난해 코레일은 5000억원의 재정을 수혈받았다. 그럼에도 “정선선 폐쇄 반대”라는 목소리가 잦아들지 않는다. 우리나라 납세자들은 너무 착하고 순하다.

 이미 철도의 독점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고속도로와 저가항공 등 다양한 대체 수단들이 등장한 지 오래다. 서울지하철 9호선은 무인운행시스템을 갖췄고, 미국의 아마존이 무인비행기 드론으로 택배를 하겠다는 세상이다. 기술적으로 자동 무인 열차는 시간문제일 뿐이다. 물론 철도는 여전히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저탄소에다 고속·대량 수송에 적합하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철도의 공공성만 내세울 때가 아니다. KT&G만 봐도 공기업에 경쟁과 개방은 좋은 자극이다. 길게 보면 코레일도 민영화가 근본 해법이다. 이미 기술 발전과 시장의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어쩌면 이번 파업이 철도노조의 마지막 파업일지 모른다.

이철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