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관계의 신국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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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레오니드·브레즈네프」소련공산당서기장의 10일간에 걸친 방미여행이 16일부터 시작되었다. 59년 「흐루시초프」의 방미와 67년 「코시긴」의 방미 등 소련수뇌의 미국방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브레즈네프」의 금 차 여행은 변천하는 미·소 관계는 물론 현 국제조류에 비추어 다시금 역사적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국제정치의 역사적 의의라는 관점에서 볼 때 작년에 있었던 「닉슨」미대통령의 극적인 중공방문과 소련방문은 전후 줄기차게 계속됐던 동·서 냉전구조를 용해시키게 했다는데서 특기할 일이었다. 지난날 냉전시대의 동·서 정상회담은 대화 그 자체가 대결의 수단이었다. 숱한 문제가 제기되었으나 그것은 대결된 채 증발되었고 외교의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그러나 바야흐로 협상시대와 더불어 동·서 정상회담의 성격은 크게 변화했으며 대화는 그 자체가 문제해결의 수단이 된 것이다. 이는 이미 작년 5월의 미·소 정상회담에서 볼 수 있듯이 구체적인 합의와 협정으로써 입증된 것이다.
이번 미·소 정상회담에서는 전략 무기제한문제, 무역 및 경제협력, 중동·구주·인지문제 등 광범위한 것들이 토의될 예정이다. 이러한 것은 이미 궤도에 올라선 미·소 관계를 비롯해서 미·소가 서로 바라는 양극구조의안정과 정착에 비추어 그 어느 것도 비관할 성질의 것은 아니며 이번 회담을 통해 미·소 관계는 다시금 새로운 국면을 띠게될 것이다.
특히 소련은 대 서방접근에 적극적이다. 그 배경으로서는 계속 격화되고 있는 중·소 분쟁과 더불어 중공을 견제해보자는 의도도 주요 동인의 하나가 될 수 있지만 보다 큰 이유는 서방측의 풍부한 대본과 기술을 도입하여 소련에서 실패한 경제를 치료해보자는 것이다.
소련경제의 성장 율은 「흐루시초프」시대의 연간 6%를 최고로, 그후 점점 후퇴하여 71년에는 3.5%,작년에는 농작물의 흉작과 함께 약 1.5%라는 최악의 부진을 기록했다. 소련이 서방측 공업국과의 경제·기술협력을 확대하려는 소이는 이러한데 있다. 「볼셰비키」혁명 56년, 소련이 급기야 서방측에 경제협력을 요구하게 됐다는 것은 적이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그러나 소련의 경제적인 대 서방 경조와 더불어 동·서 평화공존체제가 더욱 뿌리를 깊이 내리게될 것은 틀림없다. 그와 아울러 세계의 현상고정화와 함께 어느 의미에서 국제긴장의 완화가 촉진될 것도 예상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다극화 시대라고는 하지만 국력이나 군사력을 볼 때는 아직도 미·소 양극 체제이며 이 양극구조의 변천과 그 진전방향은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그것은 한국의 처지에서도 커다란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일찌기 「얄타」비밀회담에서 한국을 분단하여 비극의 씨를 안겨줬음을 기억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미·소 관계의 변화와 더불어 그것이 한반도의 평화에 대해서도 적극 기여하게될 것을 바라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해방 후 분단을 고정화하면서 북한의 6·25남침을 사주한 소련은 지난날의 과오를 뉘우쳐야 할 것이며, 더 이상 침략자의 후견세력이 되지 말 것을 강력히 바란다. 미국이나 서방제국 또한 소련이 진정으로 평화를 추구하는 한에서 소련에 대한 경제협력에 뜻이 있음을 알고 소련으로 하여금 국제평화와 질서에 순응하도록 이 기회에 적극적으로 작용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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