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랑하는 이에게 하고픈 말, 피아노로 정겹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정명훈씨는 피아노를 ‘친구이자 애인’이라 했다. [박종근 기자]

오랜만에 피아노 앞에 앉은 정명훈(60·서울시향 예술감독)씨는 한동안 멀리했던 벗을 만난 듯 흔쾌했다. 피아니스트로 출발했지만 지휘자로 명성을 얻은 뒤 연주 솜씨를 보일 기회가 드물었기에 피아노와 나누는 대화는 수다스러웠다. 24일 서울 대치동 마리아 칼라스 홀에서 첫 독주 앨범 발표회를 연 정씨는 ‘모태(母胎) 음악’의 숙명으로 만난 피아노를 “제일 친하고 사랑하는 친구”라고 불렀다.

 “제가 칠남매의 여섯째인데 형제들이 다 음악을 해서 태어나기 전부터 음악을 들었고 일평생 다른 걸 할 생각을 안 했어요. 음악은 일찍 시작할수록 좋으니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음반을 만들었습니다.”

 건반 위에 손을 얹은 정씨는 경쾌한 스타카토로 모차르트의 ‘작은 별 변주곡’을 쳤다. 손자 손녀들이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짧고 귀에 익은 작품을 선곡한 할아버지의 정성이 느껴지는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 슈만의 ‘트로이메라이(꿈)’와 ‘아라베스크’가 강물처럼 흘렀다.

 “세계적인 음반 레이블인 ECM에서 프로듀서로 일하는 둘째 아들이 청해서 지난 7월 베니스의 라 페니체 홀에서 녹음했는데 ECM을 이끄는 만프레드 아이허가 듣는 데 재주 있는 사람이에요. 다른 레코딩이 기계적인데 반해 친밀하고 독특하면서 마음이 편했어요. 사랑하는 이들에게 평소 하고 싶었던 내밀한 말을 피아노로 표현하는 기분이었죠.”

 이름이 루아(달)인 둘째 손녀를 위해서 드뷔시의 ‘달빛’을, 그가 만난 가장 열정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이자 큰 도움을 받은 누나 정경화씨를 생각하며 쇼팽의 ‘녹턴(야상곡)’을 골랐다.

 “개인적 경험, 중요했던 순간, 영향 받은 이들과 연결된 내 인생의 곡들이죠. 슈베르트의 ‘즉흥곡’은 기도이고요. 다음에 피아니스트로서 한 장 더 낸다면 쇼팽 레코드를 만들까 해요. 쇼팽 없이 못사니까.”

 그는 생각에 잠긴 듯 천장을 바라보며 쇼팽의 ‘발라드 1번’을 치기 시작했다. 1974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2위에 올랐던 스물한 살 청년 피아니스트의 귀환이었다.

글=정재숙 문화전문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정명훈씨 첫 독주 앨범 발표회
'작은 별' '엘리제를 위하여'연주
스물한 살 피아니스트로의 귀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