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민] 북·미핵외교 정책과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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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 일각에서는 미국을 믿지 못하는 견해가 강하게 표출되고 있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명한 부시 정부가 교류협력이 심화되는 남북관계와 정상회담이후 급진전하는 일북관계를 견제하기 위해 [우라늄 농축]문제를 제기하였다는 음모론이다. 작년 10월 북한의 강석주 외교부 부부장은 미국무성 켈리 차관보에게 충격적인 발언을 하였다. 미국이 의심하던 우라늄 농축을 통한 핵무기 개발을 시인하였다. 강석주 부부장의 발언을 둘러싸고 국내에서는 국론이 양분되는 출발점이 되고 있다.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는 가운데 북한의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한 그레그 前미대사는 11월4일 강석주를 만났다. 켈리-강석주 회담에 대해 묻는 그레그 대사에게 강석주는 [나는 그 계획(우라늄농축)을 몰랐다. 계획을 아는 자들을 모아서 어떻게 대답할지 결정해야 했다. (다음날 켈리 차관보에게) 미국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어떤 무기라도 개발할 권리가 있다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강부부장은 김정일 참석 여부에 관해 [상상에 맡긴다]고 했다. 이 사실을 보도한 일본의 마이니찌 신문(2월24일자)는 이라크 다음 목표가 자신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 속에서, 북한이 핵개발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대미 교섭의 카드로 하는 길을 택했다고 평가한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10월25일 미북 불가침 협정을 체결한다면, 미국의 안전보장상의 우려를 해소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으며, 강석주 부부장도 그레그 대사에게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불가침 보장을 전제로 고위급 회담을 연다면 미국의 핵에 관한 우려에 대해 대답을 준비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그러나 일본인 납치를 인정했던 때와 마찬가지로, 북한의 자백외교는 부시정부의 냉담한 반응으로 오산임이 드러났다. 미국은 나쁜 행동에 대해서는 보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적 입장 아래 우라늄 농축 계획을 폐기해야만 대화에 응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이후 북한은 한미일 3국의 중유제공 중단을 계기로 핵동결을 해제하고 NPT를 탈퇴하는 등 벼랑끝 외교로 치닫고 있다. 북한의 벼랑끝외교는 3가지 차원에서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

첫째, 핵동결 해제를 통해 핵폭탄의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 생산을 위한 단계를 밟고 있다. IAEA 사찰관 추방, NPT 탈퇴에 이어 동결중인 핵시설의 가동을 추진하여 5MW 원자로를 지난 2월27일 가동한데 이어 재처리 시설 가동을 위한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재처리 시설을 가동하여 북한이 보관하고 있는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할 경우, 6개월내 북한은 핵폭탄 5개를 추가로 보유할 수 있게 된다. 둘째, 정전협정의 무효화와 함께 무력시위를 강화하고 있다. 북한은 2월17일 정전협정 파기 가능성을 시사한 이래, 북한 전투기가 거의 20년만에 북방한계선을 침범하였으며, 3월4일에는 미그 29 등 전투기 4대가 공해상의 미정찰기에 접근하여 공격태세를 취한 바 있다. 셋째, 미사일 모라토리엄의 폐기를 위협하며 미사일 발사 시위를 벌리고 있다. 북한은 2월24일과 3월10일 두 차례에 걸쳐 지대함 미사일의 실험발사를 하였으며, 노동 미사일, 대포동 미사일의 발사를 준비하고 있다.

북한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카드를 동원하여 대미 압박수위를 올리고 있지만, 정작 이에 대한 부시 정부의 입장은 매우 냉정하다고 할 정도로 미온적이다. 일관되게 미국은 잘못된 행동에 대해 보상할 수 없다는 기본 원칙하에 우선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폐기해야지만 협상할 수 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부시 정부의 대북 정책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첫째, 부시정부는 북한 핵문제보다 이라크 문제 해결을 우선하고 있다. 부시 정부는 이라크 문제 해결에 총력을 기울이고 북한 핵문제는 이라크 문제 해결이후에 처리한다는 입장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의 벼랑끝 외교에 관해 냉담하게 반응한다고 볼 수 있다.

둘째, 북한에 대한 공격의 의도가 없으며 외교적 수단으로 해결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핵보유로 나설 경우 군사수단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수 있음을 숨기지 않고 있다.

셋째,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완전히 포기할 경우 과감하게 북한이 원하는 것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이 불가침 보장을 문서로 할 수 있음을 언급하고, 켈리 차관보는 북한이 핵개발을 완전히 포기할 경우 관계개선, 경제지원 등 과감한 접근(bold approach)을 취할 준비가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넷째, 미북 직접대화보다 다자간 협의의 틀을 통한 협상을 모색한다. 제네바 합의와 같이 미국이 북한의 핵문제를 전담하는 방식을 피하고, 북한 핵무장에 이해가 있는 주변국들,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의 당사국들이 모두 참여하는 방식의 다자간 협상 틀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이 다자간 협상틀을 선호하는 이유는 북핵문제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닌 국제사회의 공동 관심사로서 북한에 대한 압력을 높이는 한편 특히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의 적극적 역할을 유도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섯째, 북한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모색한다는 점이다. 제네바 합의와 같이 문제의 동결이 아닌 핵, 미사일, 생화학무기 등 북한 대량살상무기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모색한다는 점이다. 즉 북한 핵프로그램의 검증 가능한 완전한 포기를 추진하고 미북간의 현안 사안을 포괄적으로 타결하려 한다고 볼 수 있다.

부시 정부는 당근과 채찍에 입각한 전통적인 협상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단지 이라크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부시 정부는 재처리를 시도하거나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는 한 북한의 벼랑끝 외교에 대해 크게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라크 전쟁이 끝날 때까지 미국은 한반도 주변에 대규모 군사력을 동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미 정찰기에 대한 북한 전투기의 접근사건을 계기로 괌에 B-1 폭격기 등 24기를 배치하는 조치를 취하였고, 항공모함 칼빈슨호를 한반도 해역으로 이동시켰다. 이는 이라크 전쟁에 즈음하여 북한의 오판을 억제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종결시킨 후 여세를 몰아 북한핵문제의 해결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다.

북한도 미국이 두 개 지역의 동시 전쟁 수행을 피할 것을 알고 있으며 이라크전 기간중을 기회로 활용하여 벼랑끝 외교의 수위를 높여놓아 이라크전 이후 본격적인 대미 담판에서 유리한 협상 위치를 선점하려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북 모두 유리한 고지에서 협상을 시작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으며, 결국 이라크전이 종결된 이후에야 미북간의 협상이 본격화될 것으로 판단된다.

이라크 문제가 해결될 5월쯤 한반도의 핵문제는 본격화될 전망이다. 북한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단지 미국으로부터의 불가침인지 아니면 핵무기 보유인지 현상황에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북한은 현재 핵개발을 강행할 것인지 아니면 핵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와 더불어 살 것인지의 기로에 서있는 점은 분명하다. 9년전 김일성주석은 극한전략을 통해 경제지원, 에너지, 관계개선은 물론 핵모호성을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이제 김정일 위원장은 아버지가 벌린 극한외교 전략을 답습하여 마지막 승부에 나섰다. 문제는 9년전에는 상대가 클린턴정부였지만, 이번에는 9.11 테러를 겪은 부시 정부라는 점이 다르다.

미국은 이라크전쟁이 종결될 때까지 북한의 극한전략으로 악화되는 국제여론을 배경으로 대북 압박을 위한 국제환경을 조성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영변의 핵재처리 공장을 가동하여 풀루토늄 생산으로 들어갈 경우 미국은 초정밀 폭격을 통한 문제 해결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스라엘 공군기들은 이라크의 오시락 원자로를 폭격하여 핵개발을 저지한 바 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옵션은 이라크의 경우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한국의 안전 문제이다. 휴전선에서 불과 3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한국의 수도인 서울이 위치하며 수도권에는 약 2천만의 인구가 밀집되어 있다. 북한은 한국의 수도권 북방에 다연장 로켓포를 집중 배치하고 있으며, 이를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은 제한적이다. 북한이 다연장 로켓에 화학탄을 쓸 경우 수백만의 서울시민을 살상하는 등 심대한 타격을 한국에게 줄 수 있다. 한국으로서는 군사적 옵션은 고려할 수 없는 입장이다.

둘째로 북한의 배후에 있는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군사적 옵션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이다. 1949년 내전에서 힘겹게 승리한 신생 중국은 열악한 상황하에서도 1950년말 한국전쟁에 개입한 바 있다. 이는 중국이 갖는 북한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말해준다. 중국은 미국의 북한에 대한 군사적 공격을 감내하기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일한 초강대국 미국은 북한의 핵무장을 과연 좌시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윤덕민(외교안보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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