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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동설의 한국 첫 주창자 17세기 이조 학인 김석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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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사편찬위원회는 27일 하오 제2회 한국사연구발표회를 가졌다. 이날 민영규 교수(연세대·사학)는 『17세기 이조 학인의 지동설- 김석문의 「역학도해」 6권과 그 절사간본호접장단책』을 발표, 한국에서의 지동설 주창자로서의 김석문의 학문을 처음으로 학계에 소개했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1687년은 「뉴튼」이 『프린시피어』를 발표한해이지만 10년 뒤인 1697년 조선의 김석문은 『역학도해』 6권을 완성했다.
2만7천2백여 단어와 44장의 대형 천체도로 엮어진 이 책은 역학을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움직이는 천체와 움직이지 않는 지구와의 관계를 그야말로 「코페르니쿠스」적으로 발전시켜 그 필연성을 증명하고 종래의 믿음에 하나의 혁명을 가져 왔던 것이다.
김석문은 이 책에서 『천체가 지구둘레를 도는 것이 아니고 지구가 자전함으로써 낮과 밤의 하루가 이루어진다. 그것은 마치 배를 타고 산과 언덕이 움직이는 것을 보되 기실은 산과 언덕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배가 움직이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완성했을 때 그의 나이는 40세.
김육 김좌명 김석주와 가까운 청풍 김씨 집안으로 자는 병여, 호는 대곡이다.
『역학도해』 6권 본이 정판에 올려졌다는 기록은 없다. 사본으로 전해졌으며 1727년 도판 13판, 서목·총해 8판, 총자수 1만4천5백자의 절사본단책이 간행된 바는 있다.
서양의 천문학사에서 볼 때 그의 이론은 분명히 「티코」의 이론에 속한다.
서양근세 천체물리학의 완성은 「코페르니쿠스」가 아닌 「티코·브라헤」「케플러」와 「뉴튼」의 선에서 직선을 이룬다.
다만 「티코」의 이론은 명말청초에 중국으로 건너올 때 지동설로서 소개되진 않았다. 지구는 어디까지나 부동한 것이며 천체만이 회전하는 것으로 돼있는 전형적인 천동설로 서였다.
그러므로 김석문의 책에서 「아담·샬」의 『오위역지』가 자주 인용되고 「티코·브라헤」의 천체도와 비슷한 점이 있다해서 우리는 조금도 염려할 것이 없다. 지동설이 처음에 하나의 저술로 중국에 소개된 것은 1767년 「프랑스」선교사 장우인(베노아)의 손으로였다. 그가 천동설이 옳다고 완강하게 고집하는 서양의 역법의 어리석음을 몇 번인가 되풀이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음미해야 한다.
그의 지동설이 완성된 시기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주자학적 세계관에 대한 최초의 도전이었다는 점이다. 서양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아타나시우스」의 주장처럼 불가수정의 것이었던 주자의 이론에 대한 도전은 놀라운 주장이었다.
지는 원래 정하고 천은 동한 것이란 종래의 주자설에 대해 지가 동하고 천은 정하다는 주장을 내세운 것이다.
또 주자의 구중천설에 대해 구층천설을 내세우기도 했다. 『주자가 하늘에 구중천이라 해서 9개 하늘이 겹쳐있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틀린 생각이다. 오직 서로 직경이 다른 9개원의 선회가 있을 따름』이라고 한 것이다.
원주율 산정법 곧 직경에 대한 원주의 비율을 3·141592임을 설명하기도 한다. 이런 산정법은 동양에서 유송 때 조중지가 지었다는 『철술』에서 약율과 밀율이 구명된 때부터다.3·14는 밀율에서 얻어지는 수치다.
후세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를 보면 측량천지변증설에서 3백50행의 장광설이 있으나 그는 「경일원삼」의 간단한 것이어서 인율·약율도 아닌 엄청난 후퇴였다.
78세로 세상을 떠난 김석문(1658∼l735년)은 고독과 빈곤을 대가로 치러야했지만 그의 추종자는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의 『역학도해』 1권은 광주 정안리에서 찾아내 일제 때 옮겨진 것이지만 안정복의 필사본으로 전한다.
순암의 스승 성호 이만은 김석문이 이 책을 완성했을 때 16세였다. 이의준이 『소화총서』를 내려고 편목을 작성했을 때 이 책이 들어있었다. 이의준은 서유구와 같이 이덕의 제자다. 이덕무의 손자에 이규경이 있다. 오주산고의 「지구전운변증설」은 그 전문이 온통 김석문의 글을 조잡하게 초출한 것이다. 이규경·이덕무·유득공·박제가·홍대용·박지원까지도 그의 글을 읽었음에 틀림없다.
일찍이 홍대용·박지원의 지동설에 대해 일본의 한 과학사가가 서양선교사에게서 얻어들은 것이라고 의심한바 있으나 홍·박의 지동설은 거기에 전혀 관련이 없다.
이규경의 산고를 읽고 나는 두 면에서 우울한 느낌을 금하지 못했다. 하나는 그의 저작 태도가 너무 엉성해서 김석문의 세계를 요리하기엔 너무 거리가 있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홍대용·박지원·이결의 지동설에 관한 단편적 문학의 집철의 총량보다 몇 곱절이 되는 지동설이 산고에 있고 이는 누구나 쉽게 손닿을 곳에 있건만 아직 아무도 그것을 정직하게 읽은 이는 없어왔던 사실이다. 김석문의 단책본도 인본·사본형태로 현재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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