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양적완화 축소의 의미와 전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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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4호 20면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tapering)가 시작됐다. 내년 3월쯤 채권 매입 축소가 시작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일찍 조치가 내려졌다. 12월에 테이퍼링이 시작된 건 미국의 경제 상태가 좋기 때문이다. 11월에 실업률이 7.0%로 하락했고, 비농업부문 신규 고용은 20만3000건이 늘었다. 다른 경제 지표들도 점차 강해지고 있는데, 한 달 가까이 계속된 미국 정부 폐쇄의 영향이 사라지면서 제조업과 서비스업 지표의 회복이 특히 두드러지고 있다.

증시 고수에게 듣는다

예상과 달리 양적완화 축소에 따른 주가 반응이 국내외 시장에서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연준의 공개시장조작위원회(FOMC)가 끝난 당일 미국 시장이 2% 가까이 오른 반면 우리 시장은 소폭 상승에 그친 게 단적인 예다. 크게 보면 선진국은 선진국대로, 이머징 마켓은 이머징 마켓대로 주가가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차별화는 금융완화 정책이 선진국의 문제일 뿐 이머징 국가에는 중요한 요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발생 초기만 해도 선진국이나 이머징 국가나 유동성 확대에 나섰지만, 신흥국은 2010년부터 일찌감치 금융 확대 정책을 중단했다. 선진국보다 경제 회복이 빨라 굳이 강한 금융정책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서였다. 반면 선진국은 현재까지 2009년에 세웠던 금융완화 정책의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정책 차이가 서로 다른 주가 반응을 가져오는 원인이 됐다.

서로 다른 선진국·이머징 시장 상황
서로 다른 시장 상황도 주가 차이를 만드는 요인이었다. 선진국 시장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연초 이후 30% 가까이 올랐다. 주가가 오른 만큼 호황 심리도 강해 모든 재료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번 양적완화 축소만 보더라도 정책 발표 전에는 거론되는 것만으로도 주가를 끌어내리는 요인이었지만 정작 정책이 시행되자 다른 해석이 나오고 있다. 테이퍼링이 가능할 정도로 미국 경제가 좋아졌으므로 시장에 호재가 된다는 것이다. 반면 이머징 마켓에선 양적완화 축소를 호재로 보기보다 앞으로 신흥국에서 돈이 빠져나갈 수 있는 악재로 인식되면서 지지부진한 주가 흐름이 계속되고 있다.

정책은 한번 시작되면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이어지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번 양적완화 축소도 마찬가지다. 처음 시작은 월간 채권 매입 규모를 줄이는 것으로 시작됐지만 채권 매입을 중단한 후에는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채권을 매각하는 형태로 발전할 것이다.

일러스트 강일구

이런 상황에서 주가는 어떻게 될까? 우선 채권 매입이 줄어드는 내년 상반기에는 시장이 테이퍼링에 따른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지난주 양적완화 축소 조치는 정책이 바뀌었다는 걸 알리는 신호 정도로 역할이 한정될 텐데 이 경우 며칠간 주가를 움직인 후에 재료로서 역할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테이퍼링이 시작됐지만 공급 규모가 조금 줄어들었을 뿐 아직 유동성이 줄어들거나 정책 금리를 올린 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가가 변동하는 건 내년 하반기에 현재 보유하고 있는 채권을 내다 팔 때부터다. 이 시점부터는 유동성이 줄어들기 때문에 영향력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유동성 축소가 경기 둔화를 촉발한다면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지난 몇 년간 선진국 경기 회복이 상당 부분 금융완화 정책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데 힘입었기 때문이다. 결국 테이퍼링에 따른 주가 반응은 초기에는 별 변화가 없다가 시간이 지나 효과가 누적될수록 영향력이 커지는 형태가 될 것이다.

내년 하반기 유동성 축소 추이 지켜봐야
양적완화 축소로 금리와 환율 변동도 주목받고 있다. 환율은 원화보다 엔화 약세가 커서 엔당 원화 환율이 1000원을 밑돌 수 있는 점이 문제다. 여러 산업 분야에서 일본과 경합 관계에 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부정적인 흐름이 아닐 수 없다. 산업별로 보면 자동차 산업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걸로 전망된다. 2006년에 엔당 원화 환율이 한때 700원대를 기록한 적이 있다. 금융위기가 발생한 후 1500원대로 올랐고 이후 4년 동안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이 기간 동안 우리 자동차 회사들은 일본 업체에 비해 배 이상 높아진 가격 경쟁력을 누렸다. 하지만 최근 엔화 약세가 이어지면서 우리 자동차 기업의 수익성이 약해지고 있다.

테이퍼링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금리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주가와 환율이 미래 전망에 의해 좌우된다면 금리는 현실화된 지표에 의해 움직인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금융 정책과 경제 상황이 미래 변화보다 금리에 더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미국이 양적 완화를 축소했지만 상반기까지 유동성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 정책 금리 인상 역시 빨라야 2015년 이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책이 금리를 움직일 여지가 크지 않다. 펀더멘털을 감안하면 금리 변동의 여지는 더 작아진다. 내년 성장률이 올해보다 높아지더라도 회복을 체감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물가는 여전히 0~1%대의 낮은 수준에 머물러 금리 안정 요인이 강하다. 금리 변동은 아주 작은 폭에서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5년 만에 선진국이 금융완화 정책의 첫걸음을 뗐다. 정책 하나 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앞으로 변화를 지켜 보는 게 현명한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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