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대생의 가치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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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사치풍조만 높아져 가는 비뚤어진 사회풍조를 사시하면서 학구적인 분위기조차 결여된 대학생활 속에서 오늘의 한국 여대생들은 과연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항상 정서교육을 위한 여가시간에 대한 아쉬움에 쫓기면서 마음에 드는 이성을 사귀고 싶은 당연한 욕망조차 제대로 채우지 못하는 여성.
자신에 대한 부모들의 지나친 기대로 인한 불안 속에 늘 피곤한 몸으로 하고싶은 너무나 많은 일을 장래에 그려보면서도 스스로 한 일에는 노상 후회가 따라 붙는 「햄리트」적 인격의 여성.
이런 것들이 오늘을 사는 한국 여대생들의 통계적·평균치적 성격이라 밝혀지고 있다. 최근 모 여자대학교의 학생생활지도 연구소가 1천3백66명의 여대생을 대상으로 설문한 조사결과이다.
우선 8개의 설문항목 가운데서 한국의 여대생들이 가장 많은 반응율을 보이고있는 문제란 다름 아닌 「신앙·사회·도덕적 가치」를 묻는 설문이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가 주목할 만하다. 60년대에 남녀 대학생을 상대로 실시한 비슷한 설문조사에서는 「여가선용」문제의 항목이 수위에 올랐던 것에 비하면 날이 갈수록 어지러워져 가고있는 사회풍조에 대한 문제 의식이 여대생들의 의식 속에 강한 현실성을 띠고 등장하고 있다는 경향을 읽을 수 있다.
한편, 이성문제에 관한 설문조사에선 79.5%라는 높은 비율이 『결혼 전 순결은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음도 우리에게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의외」의 반응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일부에선 여성들의 교육정도와 사치풍조는 정비례하며, 성의 「모럴」은 반비례한다는 생각이 무반성하게 통념화 하고있었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결과는 바로 그같은 그릇된 통념의 허구성을 들춰내 준 데에 의의를 부여해도 좋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것은 60년대 말 「유럽」의 어느 대학생들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결과에서도 비슷한 결론이 내려졌었다는 사실이다.
세상을 그처럼 떠들썩하게 했던 「프리·섹스」의 풍조에도 아랑곳없이, 오늘날 「유럽」의 젊은 대학생들은 사실에 있어서는 의외로 건전한 성「모럴」을 보지하고 있다는 것이 그 조사에서 드러났던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희유의, 혹은 초유의 현대적 현상이란, 젊은이들 사이의 「섹스」의 자유화 현장이 아니라 『「섹스·이슈」의 상업화』 현상이라고 동 조사는 결론 짓고 있었다.
「섹스·이슈」의 상업화 현상은 그리고 보면 젊은이들의 문화가 아니라 성인사회의 문화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선 오늘의 젊은이들은 오히려 이처럼 「섹스·이슈」를 상업화하는 성인문화에 악이용 당하고 있는 피해자·희생자라고 봄이 옳을 것이다.
사치풍조 또한 마찬가지다. 그것도 젊은이들의 문화가 아니라 기성세대의 문화요, 성인의 문화이다. 그리고 그같은 성인문화를 오늘의 한국 여대생들이 「문제」로서 예리하게 의식하고 있는 것은 반가운 현상이다. 사치풍조와 밀접한 표리관계에 있는 「부정부패」에 대해서도 80%의 응답이 『의분을 느낀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으며 『물질문명만이 상승하고 있다』는 문제에 대해서도 같은 비율의 응답 반응이 기록되고 있다.
요컨대, 오늘의 우리 나라 여대생들은 반지성적인 사회풍토 속에서 흔히 폄하 내지 희고화 당하기 쉬운 여대생의「이미지」와는 달리, 훨씬 건전한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고 믿어진다. 그들의 「햄리트」적인 후회와 고민도 따지고 보면 기성문화에 동일화하지 않으려는, 또는 동일화 할 수 없는 그들 고유의 때묻지 않은 가치관이 있음으로 해서 비로소 생기는 갈등의 표현이라고 풀이 될 수 있다. 이 조사 결과는 드디어 성인사회의 반성의 한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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