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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번역한 한국 최초의 서양문학|『유옥역전』 초고본 발견|「게일」이 번역한 『천로 역정』 보다 앞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우리 문학 사상 최초의 서양 문학 번역서가 된 초고본 『유옥역전』 (『아라비안·나이트』 번역)이 최근 서지학자 안춘근씨의 장서 가운데서 발견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제까지 알려진 우리 나라 최초의 서양 문학 번역본은 1895년 「캐나다」 선교사 「존·S·게일」이 번역한 『천로 역정』(「존·버넌」 원작 (The Pilgrim’s Progress)인데 『유옥역전』의 책 말미에 기재된 번역 일자는 을미 칠월 중추로서 『천로 역정』이 발행된 해와 같은 해이지만 순수한 우리 나라 사람의 번역이라는 점에서 큰 뜻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2백자 원고지 약 2백장 정도의 분량인 「유옥역전」은 등 장인물의 이름을 「슈명」「영창」 「옥역」 등 우리 나라식 이름으로 바꾼 것 외에는 내용이라든가 작품의 흐름을 원작의 분위기 그대로 살려 놓은 점이 특색인데 특히 번역 수법은 당대에 발간된 다른 번역 서적들의 수준을 훨씬 능가하고 있어 주목을 끈다.
번역 문학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김병철 교수 (중앙대)에 의하면 『아라비안·나이트』는 1870년대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일본에서 번역돼 책으로 나온 후 우리 나라에서는 그보다 30∼40년 후 이상협 번역으로 대한 매일 신보에 연재되었는데 비록 초고본이기는 하지만 『천로 역정』과 같은 해에 『아라비안·나이트』가 번역됐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으로 돼 있는 「유옥역전」은 왕의 1천1번째 부인의 이름으로 「옥역」의 덕분에 더 이상 살생을 안 한다는 것이 전체적인 줄거리인데 『왕비는 필경 왕이 나를 데리고 사냥간 줄 알고 그 틈을 타 간부와 후원에서 음란한 일을 행하려 하니…』 등 표현이 사뭇 현대적이다. 안씨는 오래 전 이 책을 고서점에서 수집했다고 하는데 처음엔 고대소설 인줄 알았다가 차차 읽어보니 『아라비안·나이트』의 번역본임을 확인하게 됐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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