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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새 세상 열자 … 팔순 이어령의 생명선언 문화인 700명 화답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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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15일 팔순잔치에서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오른쪽)과 부인 강인숙 여사가 “내 일생에 동행해준 분들께 감사한다”고 인사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은 “공식석상에서 처음 한복을 입었다”고 했다. 한복디자이너 이영희씨가 만든 옷이다. [강정현 기자]

이어령(李御寧·80) 이름 석 자가 자석처럼 한국 문화계 인물을 끌어당겼다. 15일 서울 순화동 호암아트홀은 구름 같이 몰려드는 문화인으로 장관을 이뤘다. 문화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인물이 한걸음에 달려와 ‘이어령 식구’를 자임했다.

 1950년대부터 문화 동네 구석구석에 창조적 상상력을 흩뿌리며 살아온 ‘크리에이터(Creater)’의 팔순을 기리는 자리에 참석자들 얼굴이 화환을 대신해 만발했다.

 이어령 선생을 따르던 이들이 마련한 팔순 잔치 제목은 ‘동행(同行)-생명의 소리’. 함께 걸어온 이들과 나누고 싶은 생각을 쓴 신간 『생명이 자본이다』(마로니에북스) 출판기념회를 겸해 인문 콘서트이자 갈라 쇼로 한겨울 추위를 갈랐다.

 김동건 아나운서 사회로 2시간 가까이 이어진 무대는 영상 ‘이어령의 문화기행’ 상영, ‘생명의 시’ 낭독, 패션쇼 ‘바람의 옷’, 현대무용 ‘길’, 다문화가정 어린이합창단의 노래, 명인 안숙선·국수호와 김덕수 사물놀이의 가무악(歌舞樂)으로 훈훈해졌다.

 부인 강인숙(80) 건국대 명예교수와 함께 객석에 앉아 회상에 잠겨 있던 이어령 선생은 본인을 소개하는 순서에 백발로 등장했다. 최근 힘든 수술을 받기도 했던 그는 국수주의자란 오해를 살까 공식 석상에선 한 번도 입지 않았던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얘기 뒤에 700여 명 참석자들에 대한 고마움을 털어놨다.

『생명이 자본이다』 출판기념회 겸해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함께 동행해준 이들 모두를 위한 잔치입니다. 이 모임에 화환, 축의금, 얼음조각 세 가지가 없다고 해서 삼무(三無)라 했습니다만 사실은 오무(五無)입니다. 내빈 소개가 없고 축사가 없습니다. 나와 동행했던 이들은 똑같이 VIP이고 오신 분이 다 중요 인물입니다.”

 그러면서 잠시 예외 돌출광고라는 표현으로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을 소개했다. 나이 칠십에 이화여대 교수직을 내놓고 이제 집에 들어앉아야지 하던 참에 홍 회장이 10년 동안 글 쓸 수 있도록 불러주어 고맙다는 인사에 홍 회장은 따듯한 화답의 약속을 했다.

 “곁에 모시며 헤아릴 수 없이 큰 세계를 지닌 분이란 걸 알았습니다. 우리가 세계에 자랑할 산으로 치면 금강산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오늘 ‘생명 자본주의’를 접하고 이어령 선생님이 정말 빼어난 분이라는 확신이 드니 세계에 드러내 인정되는 계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년 뒤 백수(白壽) 잔치를 제가 주관할 수 있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김동건 아나운서가 “그 백수 잔치 사회를 제가 맡겠다”고 응답하자 객석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이날 선보인 『생명이 자본이다』는 이어령 선생이 한평생 품어왔던 ‘생명 자본주의(The Vita Capitalism)’에 대한 생각의 시작을 알리는 일종의 선언문으로 화제가 됐다. 그동안 주로 생물학이나 과학 분야에서 사용된 생명애·장소애·창조애의 세 가지 중심 주제를 인문학적 입장에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선언이다. 행사 전체를 꿰뚫는 이미지로 등장한 ‘금붕어’는 생각의 출발점이자 상징으로 주목받았다.

50년 전 겨울밤의 기억, 평생의 화두로

 이어령 선생은 책 서두에서 “아무래도 50여 년 전 그 겨울밤의 기억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될 것 같다”고 썼다. 신혼 단칸 셋방 시절, 연탄불을 꺼트린 방안에서 살얼음 속 화석처럼 박혀 꼼짝 않는 어항 속 금붕어를 살려내던 체험이다. “금붕어의 어항이 그것들이 태어난 강물과 바다로 이어지면서 지구 크기의 생명권으로 번져나간다”는 구절 뒤에 그는 썼다.

 “‘자살’이라는 말도 거꾸로 읽으면 ‘살자’가 된다는 강렬한 모국의 언어로 감지한 목숨, 그때까지 숨기고 살아온 내 굳은 생명의 살점을 만져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하얀 입김과 함께 튀어나온 말이 유레카였다.”

 가무악단이 선창한 ‘아리랑’을 따라 부르던 손님들은 호암아트홀 로비에 마련된 잔칫상으로 자리를 옮겨 잔치국수를 먹으며 이어령 선생의 장수를 축원했다.

 “(이 책을) 조금 일찍 쓸 걸 그랬나 봅니다” 체념하던 노장은 아직 “두 번, 세 번 생명의 바다로 뛰어들 기회는 있습니다”고 운명을 감수(甘受)한다. 서구 금융자본주의의 황혼을 생명자본주의로 깨치고 나가자는 그의 묵직한 음성이 금붕어의 비늘을 흔들며 퍼져나갔다.

글=정재숙 문화전문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이어령=1934년 충남 아산 생(실제 1933년). 서울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 문학평론가·소설가·시인·희곡작가·에세이스트·문명비평가 ·언론인 등으로 활동했다. 1956년 한국일보에 ‘우상의 파괴’를 발표하며 기존 문학판을 뒤흔들었고, 63년 펴낸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82년 『축소 지향의 일본인』을 써 일본인이 인정한 일본 문명 비평서로 현재까지 손꼽힌다. 88년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과 2000년 밀레니엄 기념식 ‘새 천년 생명과 희망의 탄생’을 기획했다. 1991년 초대 문화부 장관, 이화여대 석좌교수를 지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결합한 ‘디지로그’라는 신개념을 만드는 등 한국 문화계의 아이디어 뱅크로 불린다.

생명의 시-미친 금붕어   이어령

어머니 저는 금붕어들이 미쳤으면 합니다.

날치처럼 어항에서 튀어나와 일제히

양자강 넓은 하류에 흐르는 강물로

노자가 말한 소리 없이 흐르는 강물로

어머니 저는 금붕어들이 지느러미를 세우고

하늘을 날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 저는 금붕어들이 미쳤으면 합니다.

옛날 낚시 바늘에 걸려 팔딱거리던

붕어였으면 합니다.

그물을 찢고 강으로 되돌아가는 힘센 붕어였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 금붕어에 밥을 주다가 이 녀석들이 이빨로

내 손가락을 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큰 눈이 하늘을 향해 있는 것을 보면

어느 날 몰래 어항을 깨고 용처럼 승천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 그런 날이 오면 저는 어머니

모른 척하고 문을 열 것입니다.

넌 빨래를 거두라고 아내에게 이를 것입니다.

금붕어들의 자유로운 비상을 위하여

나의 비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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