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에 해녀 등재 놓고 한·일전 격화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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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5, 6일 일본 해녀의 메카인 미에(三重)현이 도쿄에 상주하는 외신기자 10여 명을 초청해 일본 해녀 홍보 행사를 열었다. 이어 9월 14일엔 프랑스 신문 ‘르몽드’가 1면에 ‘사라져 가는 ‘아마(ama:해녀의 일본식 표기)’란 기사로 일본 해녀를 소개했다. 신문은 1면 사진 배치를 기피해 온 관례를 깨고 1960년대 일본 해녀 사진을 실어 눈길을 모았다. 프랑스 파리는 유네스코 본부가 있는 곳이다. 그 때문에 기사가 나온 배경엔 일본 해녀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 등재를 추진해 온 일본 당국의 관여가 있었을 것이라고 국내 전문가들은 추정했다.

# 한 달 뒤인 10월 중순. 미에현 도바시를 찾은 이선화(새누리당) 제주도의회 의원은 시 청사 곳곳에 일본 해녀 포스터와 배너들이 걸린 것을 목격했다. 도바시가 발행한 ‘아마 우표’들도 발견했다. 미에현은 일본 해녀가 존재하는 다른 7개 현과 연합해 내년 1월 ‘아마 문화 보존회’를 발족시킬 계획이다. 이어 해녀를 일본 정부 차원의 국가문화재로 지정하고 3월 중 유네스코에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신청할 방침으로 전해졌다. 주 나고야 한국총영사관은 “일본은 대외적으로는 해녀를 한·일 공동으로 등재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고 있으나 속으론 단독 등재를 추진하려는 전략”이라고 외교부 본부에 보고했다.

일본의 이런 움직임은 2007년부터 해녀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추진해 온 한국과 정면 충돌한다. 해녀 유산 등재를 놓고 한·일전이 벌어진 형국이다. 한국은 시작은 빨랐지만 제주도 차원에서 등재를 추진하면서 진전이 더딘 반면, 일본은 8개 현이 연합한 가운데 중앙정부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어 해녀 대신 ‘아마’가 유산으로 등재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일본이 만들어 발행 중인 ‘해녀 우표’(위)와 해녀 홍보 포스터. 일본 정부가 일본 해녀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하려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 이선화 제주도의원]

지난 4월부터 NHK에서 해녀를 소재로 방송 중인 아침드라마 ‘아마짱’이 20%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일본 내에서 해녀에 대해 전례 없는 관심이 일고 있는 점도 우리 측 관계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11일 처음으로 국회에서 ‘제주 해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해녀 유산 등재가 전국적 이슈로 부상한 셈이다. 공청회를 주관한 길정우(새누리당·양천갑) 의원은 “지금까지는 제주도가 해녀 등재에 노력해왔으나 예산 부족으로 학예사 1명이 전담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며 “일본이 국가 차원에서 해녀 등재에 나선 만큼 우리도 중앙정부 차원에서 적극 나설 때가 됐다”고 촉구했다.

한국 해녀, 일본 해녀보다 잠수능력 월등
전문가들은 “고무 잠수복이 없던 삼국시대부터 1년 열두 달 바닷물에 뛰어들어 온 식구를 먹여살린 한국 해녀의 불가사의한 능력은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재될 자격이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한국 해녀의 괴력은 미국도 주목했다. 미 공군은 60년대 홍석기 연세대 의대 교수를 비롯한 한국 연구진에 용역비를 제공해 한국 해녀들의 잠수 능력을 연구하게 했다. 전투기가 바다에 추락해 조종사가 빠졌을 경우 저체온증을 극복하고 생존하는 비결을 찾던 미 공군은 한국 해녀들이 겨울 바다에도 거침없이 들어가 수십 초씩 머무른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해법을 찾으려 한 것이다. 이 같은 미국의 관심으로 인해 60~80년대에 국내외 의학계에서 해녀 관련연구가 활발히 이뤄졌다. 이때 나온 논문 대부분은 한국 해녀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일본 해녀에 비해 월등한 잠수 능력 때문이었다는 게 30여 년간 해녀를 연구해 온 박양생(생리학) 전 고신대 의대 교수의 설명이다. 박 전 교수는 “한국 해녀는 어떤 직업군에서도 찾을 수 없는 고도의 ‘한랭 적응 능력(Cold acclimatization)’을 보유한 것으로 학계에서 입증됐다”며 “이 대기록은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교수에 따르면 한국 해녀들은 사람이 물속에서 떨기 시작하는 ‘임계수온’이 일반인보다 2~4도나 낮다. 또 겨울이 되면 기초대사율이 일반인보다 30%나 늘어난다. 이에 따라 해수온도가 섭씨 7~10도까지 떨어지는 겨울철에도 잠수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 해녀들은 이런 한랭 적응 능력이 없어 봄·여름에만 잠수할 수 있었다고 박 전 교수는 설명했다.

제주 해녀와 일본 해녀 사이엔 차이가 많다. 제주 해녀들은 혼자 물에 들어가지만 일본 해녀는 두 사람이 한 조를 이뤄 2∼3m짜리 줄로 부표와 몸을 연결해 교대로 물에 들어간다. 부표에 몸이 묶여 활동성이 떨어지는 셈이다. 반면 제주 해녀는 부표에 돌을 매달아 고정시키지만 부표와 몸을 연결하지 않아 활동성이 크다. 또 일본 해녀들은 상당수가 배를 탄 보조원(주로 남편)이 잡은 줄을 잡고 물에 들어가는 ‘보조 잠수’를 한다. 하지만 한국 해녀는 자력 잠수만 한다. 또 일본엔 남성들도 물에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하는 ‘해남(海男)’ 문화가 존재한다. 박 전 교수는 “일본 바다는 한국보다 수온이 높은 탓에 피하지방이 적은 남자들도 해녀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이 또한 한국 해녀가 일본보다 차갑고 힘든 바다에 더 적응한 사실을 설명해 준다”고 말했다. 해녀 경력 50년인 홍경자(63) 할머니는 “제주 해녀 물질이 일본보다 월등하다. 부산과 동해는 물론 일본의 해녀 원조도 제주 해녀”라고 강조했다.

해녀에 대한 정부의 물적·법적 지원 절실
70년대 1만4000명에 달했던 제주 해녀는 2010년 현재 4000여 명대로 떨어졌다. 연령도 60대 이상이 90%가 넘는다. 해녀 평균연령은 2009년 67세에서 지난해 70세로 매년 1세씩 높아졌다. 이 추세대로라면 20년 뒤에는 1000명 미만으로 줄 전망이다.

이선화 제주도의원은 “해녀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면 해녀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늘어나 감소 추세가 진정될 것”이라며 “그러나 유산 등재 신청 건수는 국가당 한 해 1건으로 제한돼 있는데 우리는 해녀 외에 연등회·탈놀이도 경합 중인 상태라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늦어도 내년 3월 안에는 문화재청이 해녀를 등재 대상으로 결정해야유네스코에 신청 자격이 생기는 만큼 빨리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길정우 의원은 “일본 미에현이 한·일 공동 등재를 우리 측에 타진해온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네스코의 한 소식통은 “한국 해녀의 독특성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으로 보이지만 이와 함께 한국 정부가 해녀에 대한 물적·법적 지원 의지를 입증해야 등재가 성사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찬호 기자 stoncold@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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