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종 아름다움에 매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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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쓰보이」씨가 처음 「조선종」의 아름다움에 완전히 사로잡힌 것은 55년 전인 1917년, 나이 불과 20세 때다. 역시 종 연구가였던 부친의 장서에서 「쓰루가」(돈하) 상궁신사에 있는 신라 종의 명문을 보고 직접 현지에 가서 탁본을 뜬것으로부터 비롯됐다고 한다.
이로부터 「조선종」을 찾아 나선 「쓰보이」씨의 발길은 일본 전국을 누볐고, 전전 전후에 걸쳐 한국에도 여러 번 왕래하며 오대산 상원사 종을 비롯, 영·호남일대에 산재하는 조선 종들도 직접 조사를 했다.
겨우 중학과정만을 마친 「쓰보이」씨는 생계를 위해 직장에 근무하면서 주말이면 빠짐없이 종을 찾아 나섰는데 다행스러웠던 것은 일본의 절이나 신사가 한국처럼 깊은 산중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종을 아예 보여주지 않는 경우에서부터 보여주기는 해도 탁본을 뜨지 못하게 하는 등의 숱한 어려운 고비를 겪었으며 수장가를 설득해서 탁본과 실측을 하는데도 갖은 고충을 겪었다고 한다.
「시마네껭」(도근현) 운수사에 있는 신라 종의 탁본을 거절당했다가 39년 후에 비로소 탁본을 떴을 때의 기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술회하고 있다. 「쓰보이」씨는 1918년에 부친과 함께 운수사 종의 탁본을 뜨려 했었다. 그러나 노승은 보여주기만 할뿐 탁본은 끝내 거절해서 부자가 종 앞에 주저앉아 온종일 비천상만 들여다보면서 한숨을 쉬다 돌아왔었다는 얘기다.
그는 한·일 두 나라를 통틀어서 1백 80개 가까운「조선 종」의 소재를 밝혀 보고서도 낼 계획이다. 뿐 아니라 일본 종(화종)에도 조예가 있어 이미 두 권의 저서를 내놓고 있는데 이러한 공적으로 지난 11월에는 일본정부의 자원포장까지 받았다. 2남 1녀를 둔 「쓰보이」씨의 장남은 지금 「나라」(나량)에 있는 평성궁 발굴조사 책임자로 일하고 있으며 장녀는 도자기 전문가로서 3대에 걸쳐 일가가 고고학 분야에 종사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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