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비싼 '탄소세' 29만원 배출 차량 700만원 물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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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중형차인 쏘나타와 K5를 사는 소비자에게 150만원의 부담금(2017년 기준)을 물리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국민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로 불리는 싼타페를 사도 100만원을 내야 할 판이다.

 정부는 9일 부담금운용심의위원회에서 저탄소차협력금 제도를 2015년부터 시행하기로 확정했다. 차종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차를 사는 소비자에게 부담금을, 배출량이 적은 차를 사면 보조금을 주는 방식이다. 사실상 탄소세가 도입돼 차값이 오르는 셈이다. 이 제도는 2017년까지 매년 기준이 강화된다.

 제도 도입 취지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대형차 대신 소형차 구매를 권장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소형차도 부담금에서 예외가 아니다. 현재의 탄소 배출량을 기준으로 환경부 안을 적용하면 엑센트 1.4는 50만원, 투싼 2.0은 150만원을 부담하게 된다. 최고 550만원의 부담금을 낼 가능성이 큰 카니발은 영세업자가 영업용으로도 많이 쓰는 차다.

 이 제도는 이명박정부의 녹색 정책에 따라 2010년 1월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에 근거가 마련됐다. 그런데 환경부가 새로 검토 중인 안은 당시 안보다 강력하다. 각종 기준과 최고 부담금(300만원→700만원)이 훨씬 높아졌다.

 환경부 안이 그대로 확정되면 시행 첫해인 2015년에만 차를 사는 소비자들은 4809억원(연간 120만 대 판매 기준)을 내야 한다. 이 가운데 다시 보조금으로 지급되는 돈은 2616억원이다. 박연재 환경부 교통환경과장은 “나중에 친환경차가 늘어나 보조금이 많아질 수 있기 때문에 초기에는 여유자금을 쌓아둘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한 해 5000억원에 육박하는 돈을 거둬가려면 충분한 의견 수렴을 해야 한다”며 “정부가 시장 가격에 직접 영향을 줘 소비자 선택을 바꾸겠다는 발상은 가장 저급한 규제”라고 말했다.

 과잉·중복 규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고 부담금(700만원)을 내게 되는 에쿠스를 1년에 2만㎞씩 10년간 타면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를 유럽연합(EU)의 배출권 가격으로 환산하면 29만원이다. 29만원어치 탄소 배출에 700만원을 부과하는 것이다. 이 규제가 없다고 친환경 차 확대를 위한 정책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정부는 자동차 업체별로 2015년까지 평균 연비를 17㎞/L로 낮추도록 했다. 어기면 과징금을 물게 되는데, 국내 자동차 업체는 이미 이 기준을 모두 충족했다. 익명을 요청한 자동차 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하지 말라고 해도 친환경차를 늘려야만 업체가 생존할 수 있는 상황인데 정부가 극단적인 규제책을 들고 나왔다”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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