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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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전세계의 계속적인 영화불황에도 불구하고 금년에 접어들면서 우리영화계는 영화당국의 보다 적극적인 시책에 힘입어 지난 2, 3년 동안 나타난 그처럼 혹심한 불황을 되풀이하거나 적어도 그이상의 하강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졌었다.
이러한 기대는 71년 초 발족한 영화진흥조합이 영화산업육성을 위한 기관으로 금년부터는 최소한의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에서, 또「시나리오」사전심사·외화 실사 심사 등 금년에 첫선을 보인 새 시책들이 더 이상의 영화 퇴조는 막아줄 것이라는 예상에서 비롯된 것 같다.
그러나 그 원인이 어디 있었든지 간에 금년 한해 동안의 영화 활동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위축되어 60년대 후반기부터 보여왔던 사양도의 폭을 좁히지 못했다.
다만 명백히 드러난 것은 영화불황이 TV나「레저·붐」등 외부적 요인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영화자체의 내부적 요인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영화당국은 금년부터 저질영화를 배제하기 위해 영화제작편수를 1백50편으로 제한하는 시책을 채택했다. 종래 2백여 편씩 마구 양산되어 저질영화들이 판을 쳤던 것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시책은 수긍이 가는 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년에 제작된 영화가운데 뚜렷하게 우수영화로서 평가 할 수 있는 작품이 나오지 못한 것은 아무래도 영화인자체의 자세에 문제점이 있는 것 같다.
영화인들은 관객의 방화외면을 탓하고 외화 관에 쏠리는 관객의 발걸음을 원망했으나 아무리 국산영화라도 작품에 따라서는 외화에 못지 않은 관객을 동원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이른바 흑자선 이라는 관객5만 이상을 동원한 영화가 69넌 46편, 70년22편,71년 21편에서 금년에는 불과10편 정도로 내리막길의 수세를 보이고있음에도 불구하고『충녀』(김기영 감독·20만), 『봄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신성일 감독·14만)등 몇 편의 영화가 크게 흥행에 성공한 사실은 국산 영화의 관객 동원 가능성이 아직 상존 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금년에 우리 영화인들이 보인 비 의욕적인 자세는 5월 서울에서 개최된「아시아」영화제에서도 여실히 나타났다. 금년의「아시아」영화제는 이제까지의 시상 제에 뒤따른 잡음을 배제하기 위해 견본 시로 첫 출범한 영화제였다. 주최측인 한국의 입장은 견본 시로 첫 출발하는「아시아」영화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우리 영화의 해외 진출 등 여러 가지 성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으나 준비소홀 과 행사진행상의「미스」로 기대에서만 그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런 대로 금년에 제작된 우리 영화의 어떤 특성을 지적한다면 그것은「멜러·드라머」의 퇴조와 건전한 방향에로의 발돋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현상이 반드시 영화 발전을 위한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당국의 시책에 호응했기 때문이든 아니든 하나의 조그만 방향전환의 모색이라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면에서 받아들여져야 할 것 같다. 반면 세계의 영화산업이 대작위주의 제작 방향에서 탈피, 소규모라도 특징 있는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몇 제작자들이 보통5편∼10편을 만들 수 있는 대 자본을 투자, 이른바 대작영화를 시도했음은 비록 이들 영화가 흥행에서 실패하지 앉았더라도 하나의 문제점을 남겼다.
금년 한해동안 영화인들의 동향을 보면 감독분야에서 유현목 과·김수용·이만희 등 연기분야에서 김진규· 신영균· 최무룡 등 중견 층이 예년에 비해 부진한 활동을 보인데 비해 이원세·강대선 등 신예감독과 신영일·나오미·김희라 등 신인배우들의 활약이 비교적 두드러졌다.
이러한 양상을 세대교체라고 표현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겠지만 뭔가 새로운 분위기를 형성하려는 조그만 노력으로 평가 돼야 할 것 같다. <정규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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