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에 서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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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사람이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는 것도 요일에 따라 다른 모양이다.
3년전에 일본의 국철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기차 속이나 역에서의 분실물이 제일 많은 것은 화요일이며, 그 다음이 금요일과 일요일이다. 그리고 가장 적은 것이 목요일이었다.
화요일에 왜 사람들이 제일 방심하기 쉬운 것인지 알만도 하다. 일요일에 잔뜩 휴식한 다음에 다시 일하기 시작하는 첫날인 월요일에는 누구나 바짝 긴장하게된다.
그 긴장이 화요일이 되면 풀린다. 일이 손에 잡히게 됐다는 자신이 생기기 때문이다. 수요일에 특히 사람들이 술집을 곧잘 찾아드는 것도 이런 심리에서일 것이다. 숨을 돌리기 위해서라는 뜻도 물론 있을 것이다.
기이한 것은 가장 사람들이 마음을 풀어놓기 쉬운 토요일에 오히려 분실물이 적다는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별로 이상할것도 없다. 토요일에는 사람들이 별로 서두를 필요가 없는 것이다. 1주일의 일은 다 끝내고 완전히 몸을 풀 수 있는 일요일이 또 기다리고있는 것이다.
그것은 「러쉬아워」때 제일 분실물이 많다는 사실과도 부합되는 얘기다.
1년을 통틀어서 분실물이 많은 것은 4월이라고 한다. 아마 화요일과도 같은 심리가 4월에 작용하는가보다. 더욱이 4월의 따듯한 봄 날씨는 추위에 움츠렸던 사람들의 마음을 탁 풀어주기도 다.
12월에 분실물이 많게되는 까닭도 납득이 갈만하다. 토요일은 1주간의 끝날이지만 12월은 1년의 끝달이다.
그러나 토요일에는 일요일이라는 공일이 있는 반면에 12월에는 일요일이 없는 것이다. 누구나 서두르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것을 남은 30일 동안에 청산해야하는 것이다. 1년 중의 가장 바쁜 「러쉬아워」라고 할까. 분실물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하나도 잃을 수도 없고, 잊을 수도 없는 달이다. 여유가 전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결산을 서두르지 않아도 좋을 어린이들에게는 그러니까 12월처럼 즐거운 때도 없다. 눈이 있고, 「크리스머스」가 있고, 설날을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고….
어른들에게는 그런 즐거움이 없다.
그저 바쁠 뿐이다. 그리고 그 뒤끝에 따르는 허전함이 있고 또 서운함이 있고….
세월은 덧없어 이해도 다갔네, 그리운 이는 가고 아니오시네… 내 생애 이렇거니 어이 아니 웃으랴! 세상이야 다단해도 봄은 오고 또 가누나,
묻노라 저 세상일 얼마나 아득하여
한 평생에 몇번이나 이렇게 울리려느냐?
세모에 읊은 용재 이행의 시다. 스산스럽지 않을 수 없는 게 세모이다. 그런 세모에 우리도 다가선 것이다. 얼마나 많은 분실물이 생길지도 아직 아무도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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