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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강·안동「댐」 수몰지역 문화재 이전피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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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토개발의 대역사에 옛 조상의 슬기로웠던 발자취가 사라져가는 그 땅에 대역사에 못지 않은 정부의 수몰문화재 구조작전이 「피치」를 올리고 있다.
지난 10일 역사적인 담수가 시작된 소양「댐」 수몰지역 2천1백만평에는 숱한 문화재가 흩어져 있고 오는 76년까지 완공되는 안동「댐」 수몰지역 역시 이른바 안동문화권을 형성했을 만큼 선현들의 지혜가 번득이던 곳. 매초 41t의 물이 높이 1백23m로 축조된 거대한 사력「댐」에 갇혀 2년 뒤에는 섬이 7개나 생기는 내륙의 인공호를 이룬다. 춘성·양구·인제 등 3군 6개 면 36개 리에 걸치는 수면은 4천여년 동안 보존돼왔던 춘성군 북산면 내평리 대곡리 선사유적지와 인제군 남면 「3·8교」까지 고금을 망라하는 역사를 고스란히 삼켜버리는 것이다.
이 지역의 대표적인 유물로는 춘성군 내 내평 1, 2리와 추곡·추전·대곡리 등지의 고인돌(지석묘) 9기, 인제군 남면 신남리에 고려 말기 3층 석탑과 석불 각 1기가 있다. 그러나 특기할 것은 춘성군 북산면 대곡리 맞은 편 속칭 거무성산에 있는 천연기념물 75호 「장수하늘소」발생지다. 이 장수하늘소발생지는 1930년대 춘천중학생이 곤충채집을 나갔다가 장수하늘소를 잡아옴으로써 이곳이 장수하늘소의 남방한계서식지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장수하늘소는 소만국경「우수리」지방에서만 사는 곤충. 학술적인 중요성 때문에 이곳은 일정 때부터 보호구역으로 설정돼 오던 곳이었다.
그러나 이곳이 완전히 물에 잠기게 됨으로써 서식지의 이동이 불가능한 장수하늘소는 우리 나라에서 영영 사라져버리는 셈이다.
70년5월16일 국립박물관 한병태씨가 이끄는 학술조사단이 물에 잠기기에 앞서 이곳에 흩어져있는 문화재의 이전가능성을 조사하다가 발견한 춘성군 북산면 내평리 선사유적지는 서해안일대에서나 보이는 4천년 이상의 선사유적지, 이곳에서 쏟아져 나온 유물은 무문도기 조각·불을 때던 노지·석관·석총·돌칼 등 수십 점에 이르러 지금까지의 선사시대유적지의 분포도까지 뜯어 고쳐야할 만큼 귀중한 자료가 되는 것. 그러나 이 유적지를 옮긴다는 것은 불가능해 그대로 물 속에 잠길 수밖에 없다. 이곳에 있는 유물가운데 춘성 내평리와 추전리에 있는 고인들 3개만 지난해에 춘천교육대학교정으로 옮겼을 뿐이다. 이 같은 옛 유물과 유적의 수몰과 함께 현대사의 일막도 같은 운명을 벗어나지 못한다. 조국분단의 비극을 말해주는 「3·8교」가 바로 그것이다. 인제군 남면 부평리와 관대리를 바로 잘라 북위38도선에 놓여진 이 다리는 6·25격전을 치르며 군사적인 필요에 따라 소양강의 지류인 부평천에 세워졌던 것.
한편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 안동「댐」이 막힘으로써 물에 잠길 문화재는 30여점.
안동군 예안면 동부동 산11에 있는 보물 305호 석빙고는 크기로도 국내 최대지만 군왕에 대한 신하의 충정이 서려있는 곳. 이조 영조 13년(1737년) 예안 현감 이매신이 낙동강의 특산물인 이 지방의 은어를 잡아 이 석빙고에 저장했다가 임금께 바치러 사재로 만든 것이다.
4년만에 완성됐다는 이 석빙고는 길이 12.5m, 너비 6.1m, 높이 5.4m로 출입구에서 「ㄱ」자로 굽어들며 천장으로 한 줄에 19∼24개까지의 네모난 돌을 올려붙여 만들었다. 지금도 굴 입구에만 가도 냉기를 확 내뿜는 이 석빙고를 두고 당국은 두 가지의 이전책을 검토중이다.
그 하나는 물에 잠기지 않을 가까운 곳으로 옮기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의 방법은 그대로 두되 석빙고 앞으로 둑을 쌈아 석빙고에 물이 들지 않게 하는 것이다. 1천만원의 이전비도 계상해 놓고 있으나 전자의 방법으로 옮기자면 원형을 깨고 말 위험이 있고 해체하기가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문제점이 있다. 후자의 방법으로 수중에 또 하나의 둑을 쌓는다해도 어느 정도 규모를 잡아야 수압에 견뎌낼지 의문이다.
예안면에서 도산면 경계를 따라 강기슭을 거슬러 1㎞쯤 올라가면 유명한 「어부가」의 작자 농암 이현보가 이 노래를 읊던 애일당이 나타난다.
농암의 시정어린 이 정각은 후손들에 의해 물이 들지 않는 곳으로 옮겨지게 되지만 강벽바위에 이현보 선생의 음각된 호 「농암」은 물 속에 남게됐다.
이밖에 정조20년에 세워져 과거를 보던 도산시사단·대표적인 이조초기 건축양식인 예안면 서부동 선성두객사·신라통일시대에 만들어진 월곡면 나소동 나소3층석탑·월곡면 도곡동의 고인돌과 선사시대 유적지 호계서원·구계서원 등 30여점의 문화재가 이 지역에 몰려있다.
당국은 이 가운데 월곡면 도곡동 등의 선사시대 유적지 등 이전이 불가능한 것을 빼고는 거의 모두를 옮기는데 온 힘을 쏟고있다. <박영신·이기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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