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수소 폭탄의 아버지 「사하로프」보다 인간적 사회를 갈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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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소련 수소 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론 물리학자 「안드레이·드미트리예비치·사하로프」가 지난주 미국의 「뉴스위크」지 「모스크바」 지국장 「제이·액셀뱅크」에게 이례적으로 「인터뷰」를 허용했다. 4년 전 「진보·공존·지적 자유」란 공개 상을 발표한 이래 「솔제니친」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소련 자유파 지식인의 「심벌」인 그는 워낙 학적인 권위가 쟁쟁한지라 정신 병원이나 형무소에 가지는 않고 있다.
「액셀뱅크」가 그를 그의 「아파트」에서 만난 날 「사하로프」는 방금 「크로니드·류바르스키」란 천체 물리 학자의 재판을 방청하고 돌아온 직후였다. 「류바르스키」는 「반소 행위」로 기소되어 있었다.
『공판정에 들여보내 주질 않아서 9시간 동안이나 추운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류바르스키」는 5년 징역을 선고받았다.
그게 무엇 때문인 줄 아는가? 그는 검열에 반대 했었다』고 말하는 그의 음성은 절망에 젖어 있었다.
-「인민의 적」이란 낙인이 찍혀 곤란한 점이 많았을 터인데…?
『KGB가 간혹 따라 다니고 가족들이 염려된다.』
과연, 그의 아내 「옐레나」의 전부 딸인 「타냐」는 2주전에 「모스크바」 대학에서 퇴학 처분을 받았다.
그의 마음에 도덕적인 양심의 충동이 파동 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였다고 그는 회상됐다. 애초의 수폭 개발 자체를 후회하는 것은 아니라 했다. 문제는 그후 58년, 61년, 64년의 수폭 실험을 반대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후루시초프」가 『이 친구가 정치에 코를 들이미니 교량을 좀 줘야겠다』고 화를 냈던 것-.
『나는 이제 사회주의자나 「마르크스-레닌」주의자라기보다 자유파임을 자처한다』고 그는 토로했다. 그리고 『지금의 나의 입장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체제의 접합을 지지하는 것이다』고 표명했다.
소련의 사회주의가 실망을 안겨 줬다는 그의 눈에는 자본주의 제도에서도 고귀한 삶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럼 어떤 형태의 사회를 바라고 있는가?
『보다 인간적이고 인도적인 사회, 그리고 마음대로 쓰고 읽을 수 있는 사회다.』 거기다가 그는 『보다 많은 감성의 자유권과 「쇼비니즘」의 추방』을 청구했다.
그러나 그의 분노가 안면에 표출된 것은 화제가 미술 평론가 「빅토르·파인베르크」와 기수 「블라디미르·보리소프」의 수난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들 역시 투옥된 자유파 지식인들로서 「사하로프」의 「캠페인」 대상 인물들이다.
『이들은 참다운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다. 나와는 달리 형무소에 들어가 있는데 단식 투쟁으로 빈사 상태에 이르렀을 지도 모른다.』 그는 이 같은 항의 운동들이 『「닉슨」의「모스크바」 방문이래 위태로워졌다』고 논평했다. 『당국은 동서 화해로 인해 서방측 여론을 문제시하지 않아도 좋다고 느끼고 있다. 서방측은 더 이상 소련 내부의 자유의 참상에 개의치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투쟁이 정말로 무모한 것이며 아무런 변화도 가져올 수 없을 것이다』고 인정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싸우는가?
『왜냐하면 우리에게 있어 이 투쟁은 정치 투쟁이 아니라 도덕적인 투쟁이기 때문이며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진실해야 하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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