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4 대한민국 증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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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호 20면

94학번들의 대학 생활과 풋풋한 사랑을 다룬 드라마 ‘응답하라 1994’가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케이블에서 방영된 드라마로는 보기 드물게 시청률 10%를 돌파하기도 했다. 주인공들 사이에서 결국 누구와 서로 결혼하게 될 것인지를 추리하는 재미와 함께 개성 강한 명품 조연들의 연기력 등이 인기의 비결로 꼽힌다. 여기에 상경한 지방 학생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전작인 ‘응답하라 1997’보다 폭넓은 공감대를 가져간 설정이 주효했다는 분석도 있다.

증시 고수에게 듣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응답하라 1994’의 재미는 복고적 코드에 있다. “아, 당시에 이런 노래가 유행했었지. 나도 즐겨 들었는데” “맞아, 그때 저런 사건이 있었지. 잊고 있었네” 하는 깨달음이 이 드라마를 보는 재미다. 필자 역시 90년대 학번인 터라 ‘응답하라 1994’를 즐겨 보던 중 문득 1994년 당시 한국 증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를 기억하는 90년대 주식 투자자들과 함께 시간여행을 떠나볼까 한다.

응답하라 한국전력
요즘 주식 투자자들에게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기업은 두말할 나위 없이 삼성전자다. 2000년대 들어 단 한 번도 시가총액 1위 자리를 내준 적이 없는 데다 증시 영향력 또한 여타 기업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막강하다.

하지만 94년의 시가총액 1위 자리는 한국전력의 차지였다. 심지어 정보기술(IT) 버블의 영향으로 KT가 잠깐 1위에 올라섰던 1999년을 제외하곤 90년대 내내 한국전력은 왕좌를 내주지 않았다. 필자 역시 96년 주식투자를 시작하면서 한국전력의 위상이 쉽게 흔들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다. 2위인 삼성전자와의 격차가 너무 컸던 탓이다. 96년 당시 한국전력의 시가총액은 18조원이었던 반면 삼성전자는 5조원 수준에 불과했다. 현재 한국전력의 시가총액 순위가 10위권을 맴도는 수준이란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일러스트 강일구

다만 한국전력은 앞으로 전기요금 인상과 에너지 가격 하락 같은 우호적 환경과 맞물리면서 길고 길었던 지난 기간의 부진을 씻고 시가총액 순위를 올려갈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된다. 응답하라, 어디까지 올라갈 것인지. 독점력이 있는 자산주이자 배당주였던 한국전력이여!

삐삐로 누가 돈을 벌었을까
‘응답하라 1994’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대사 중 하나가 바로 “삐삐 쳐”다. 당시 삐삐는 젊은이들의 주요 연락수단이었다. 특히 음성 메시지는 얼굴을 맞대고는 좀처럼 하기 힘든 사랑 고백이나 이별 통보를 하는 90년대판 카카오톡이었다. 삐삐의 인기에 편승하고자 여러 지역 서비스와 중소 삐삐 제조업체들이 난립했지만 최종 승자는 결국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이었다. 92년 삐삐 가입자는 100만 명에 불과했지만 95년에는 500만 명을 넘어설 정도로 초고속 성장을 했고 그 중심에 있던 한국이동통신은 94년 시가총액 4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좀 더 따져 본다면 94년의 진정한 승자는 SK그룹이었다. SK그룹이 KT의 자회사였던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한 해가 바로 94년이었기 때문이다. 23%의 지분을 4300억원에 인수했으니 대박도 이런 대박이 없다. 이후 SK텔레콤으로 이름을 바꾼 한국이동통신은 휴대전화 보급 붐을 타고 2000년 들어 시가총액 2위(당시 시가총액 35조원)까지 오름으로써 한국 증시 역사에 남을 만한 기록적인 주가 상승을 보여줬다.
 
옛 이야기가 주는 교훈
시가총액 순위의 변화를 주로 얘기했지만 94년의 데이터를 보면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역시 좋은 기업이 최고의 투자 대상이라는 사실이다.

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과 97년 IMF 사태 이후 20년간은 사건·사고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좋은 기업들은 이에 아랑곳없이 시가총액을 불려 나갔다. 94년 포스코, SK텔레콤, 현대차 등 10위권 내 기업들의 시가총액은 1조5000억~5조원 사이였다. 지금 이들은 그 열 배 수준인 15조~50조원의 시가총액을 자랑하는 기업들로 성장했다. 순위까지야 맞힐 순 없었겠지만 중간에 망한 기업들만 피해서 장기투자를 했더라도 열 배의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는 얘기다.

많은 주식 투자자가 다가오는 2034년에는 2014년을 돌아보며 ‘그때 그런 종목이 있었지’가 아니라 ‘그때 그런 종목에 투자하길 잘했어’라고 뿌듯해할 수 있길 기원해본다. 20년간 변치 않는 우정을 자랑하는 ‘응답하라 1994’의 신촌 하숙생들처럼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든든한 친구 같은 기업들과 오랜 시간 함께한다면 이 역시 가능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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