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국 나들잇 길 연 영국여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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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런던=박중희 특파원】
공산주의자들로 쳐선 「왕」이란 어처구니없는 존재다. 그래서라도 왕들에겐 공산주의 하면 그건 상종이다 뭐냐, 아예 없었어야 할 존재다. 영국왕족으로 공산주의 땅에 발을 들여놓은 일이 개벽이래 한번도 없어 왔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당연했다. 그러나 세상이란 역시 바뀌는 건가 보다. 최근 공산국 유고를 공식 방문한 영국여왕「엘리자베드」의 경우도 그렇다.
『여왕폐하를 맞는 유고인민들의 영광』을 축배든 「티토」나 『우리 양 국민들의 전통적 우의에 이름하여』 영·유 친선을 다짐한 여왕의 경우나 아마 감회 치곤 각별한 것이었을 게다. 하긴 유고야 공산국치고선 꽤 서방물이 들어온 나라로 쳐져 왔다. 소련에나 갔다면 몰라도 뭐 유고 정도엘 갔다고 대단한 걸로 치느냐고도 할 법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 소련에도 간다.
이곳 소식통들에 의하면 여왕의 부군 「필립」공, 그리고 「앤」공주 등 부모는 아마 내년여름쯤 소련을 방문하게 될 거라는 얘기다. 「앤」공주는 소련 「키에브」에서 열리는 구주마술경기대회에 선수권보지(작년 영국 「버글리」대회에서 1등을 했었다) 선수로, 그리고 「필립」공은 국제마술연맹회장의 자격으로. 물론 10월 혁명난지 반세기, 영국왕족으로 소련에 발을 디디기는 처음 있는 일이다. 영국의 「에드워드」7세 왕이 모스크바를 찾았던 일은 있었다.
그러나 그건 그와 생질간이던 노제 「니콜라스」와 「아제사드르」황후를 만나러 간 거고 때도 물론 혁명 전의 일이었다. 「필립」공, 「앤」공주가 소련엘 간대도 그건 정치나 정부의 관계사는 아니다. 또 공산주의 소련사람들이 『야, 왕족 오셨다』고 잔치를 벌일 것 인가도 두고볼 밖에 없는 일이다.
그야 어떻든, 이제 왕족들도 공산국들에 나들이를 가고 공산주의자들도 왕족들을 손님으로 영접하고, 세상은 그렇게 바뀌어도 지고 하는 세월인가 보다. 구라파의 허다한 왕족들이 쓰러지고 뒤틀거리고 해도 유독 영국왕자만이 연면 끄덕 없어 왔겠느냐에 대해 누구든가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건 현실에의 적응에 기특하도록 뛰어났었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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