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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꼭 해야만 하는가|미국 사회에 대두되는 새 형태의 『개방 결혼』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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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누구든 손쉽게 생각해 낼 수 있는 미국인의 전형적인 결혼 생활이란 바로 다음과 같이 꾸며들 수 있을 것이다.
아담한 교외의 2층집, 일찍 결혼하여 1남1녀를 두고도 남편은 대학을 졸업하여 연봉2만7천 「달이 의 든든한 직장을 얻었다. 30대 후반의 이 남편은 조금씩 풍채가 좋아져 허리도 굵어지고 이마도 넓어지는 등. 석잔 술에 얼굴은 보기 좋게 붉어지는 나이가 되고 담을 기어오르던 개구장이 소년은 이제 「뉴요크· 타임스」 의 빈칸 채우기 수수께끼를 풀려고 애쓴다.
그 아내는 아직 몸매는 변함없으나 근엄한 표정. 모든 정열과 꿈이 이미 15년 전쯤의 과거 일로 돌려진 지금, 거의 비수같이 날카로운 눈길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미친 듯이 무엇이든 닦는데 열을 낸다. 자기의 머리·가구, 그리고 남편과 아이들, 닥치는 대로 닦으려고 하는 것이다.
남편 쪽이 부드러워지면 아내는 금방 딱딱해지는 식으로 이들 부부간은 모래알같이 깔깔한 상태.
정열적이던 연인들은 이제 지칠 대로 지쳐 밤새도록 하는 일이란 말다툼뿐이다.
이런 경우 이를 부부의 길은 대개 2가지로 선택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각자가 우연히 길에서 옛 애인들을 만나면 『아, 결혼 상대를 잘못 택했구나』의 생각을 품는 식으로 전개되는「사건」이고 둘째의 길은 이미 10대에 들어선 자녀들과 그럭저럭 씨름하다가 『그저 이만하면 괜찮은 편이구나』 의 체념적 생활일 것이다.
이 2가지의 선택에서 볼 때 그 밑바닥 생각은 마찬가지다. 『결혼은 옳은 것이고 다만 사람이 문제였다』는 것.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생각은 달라졌다.
불만스런 결혼 생활은 자신들의 탓으로 돌려 왔던 미국인들은 오늘날에는 그 불만의 화살을 「결혼했다는 사실」 에 돌리고 있는 것이다.
『결혼은 꼭 해야 하는가?』 「보헤미언」 이나 사회주의자들만이 품었던 이 자문이 지금 중산층들에게 널리 안겨진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부부 일체를 주장하고 결혼은 타협으로 원만하게 이끌게 되는 것. 그리고 그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이 지금 『결혼은 지옥』 이라고, 그리고 쓸모 없고 위선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어느새 결혼을 갈망하는 사람은 오직 성직자들뿐인 것처럼 보여진 것이다.
결국 미국인들의 결혼 신화는 새롭게 전개되는 듯 하다.
저 위대한 전통적 일부일처제는 그 옛날 개척 시대엔 불가피한, 절대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도시 산업 문화 속에서는 핵가족은 그의 사회적·경제적인 유리함이 줄어 들고 있다.
게다가 결혼으로 해서 미국인들은 점점 정신적 안정을 잃어 가고 있다. 한 사람으로 묶어 두는 일부일처제 기대는 남성이나 여성의 성적 본능과는 모순되는 것이라 그런 결혼 조약은 너무나 그릇되고 죄악스런 약속이 돼 버렸다.
이렇게 결혼은 사람을 묶어 두는 고색 창연한 구식 제도가 되버린 것 같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자신을 위한 생활이 아닌 역할의 연기를 강요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전혀 새로운 유형의 생활들이 전통적 일부일처제로부터의 탈피와 그 대안으로서 등장하고 있다.
『놀라운 새 결혼』 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현재의 올가미에서 뿐 아니라 그들의 관심사들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을 목적하는 생활 유형들이다.
그 하나는 「니나·오닐」, 「조지· 오닐」 부부의 『개방 결혼』 . 『남녀 결합의 새로운 생활 방법』 이라는 부제까지 붙여 이들 부부가 쓴 이 책은 일부일처제 또는 폐쇄적인 전통적 결혼 생활은 「엄격한 역할 수행」과 「엄청난 일체 주의」 , 「소유」를 뜻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결혼 제도의 구제책으로 이들은 잠정적 일부일처를 주장한다.
서로 부담을 느끼지 않는 툭 터진 관계로서의 결합은 가장 자신에 성실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동등하고 자유로운 짝지음(결합)은 이미 「오닐」 부부와 같은 극단의 자유 주의자들 사이에선 실현되어 왔다. 그것은 몰아쳐서 본다면 틀림없이 「중혼」같은 것이겠지만 단계를 끊어 볼 때는 성실한 일부일처인 것이다.
「새로운 결혼 생활」로서의 「오닐」부부의 『개방 결혼』이 성의 혁명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또 하나「제시· 버나드」의 책 『결혼의 미래』는 여성 해방 운동이라는 혁명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즉 「오닐」 부부는 종래의 결혼이 한 쌍의 남녀로 하여금 본성에 어긋나게 강요했다는 것에서 출발 한데 비해「제시·버나드」여사는 『결혼은 두 사람이 서로 상대방에게 어긋나는 일을 한다』 는 것이며 특히 남편이 아내에게 강요하는 일이 많다는 것을 지적한다.
사회학자로서 「버나드」박사는 전통적 핵가족, 잠정적 일부일처, 공동 협동 생활, 단기 계약, 3인 결혼, 「그룹」 결혼, 심지어는 독신 결혼까지 모든 생활 방식을 선택 가능으로서 지적하면서 결국은『새로운 사회생활이 요구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길을 택하는 것인가에 대해선 『어떠한 단정적인 결론은 없다』는 자신의 책 끝맺음처럼 확답을 못 주고 있다. 그러나 그는「새로운 여성」 이라면서 자신을 『기혼자』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아마도 『짝이 맺어지고 있는 상태』의 뜻으로 표현할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새생활 선택의 방향을 암시하고 있다.
어쨌든 이들 「놀라운 새 결혼」저자들의 기본 자세는 모두 현재의 고통을 덜자는 데에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들의 새로운 선택이란 그들의 특수한 문제를 위한 실험의 결과였을 뿐이다.
냉철하게 상식의 눈으로 살펴볼 때 거기에는 다분히 관념적인 면이 숨겨져 있다. 지금까지 거부되어 온 것을 낭만적 신화로서 올려놓기를 강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엉뚱한 기대와 열망을 부르고 나아가선 『그렇게도 많이 소유할 것 같던 것들이 이내 가능성조차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세계란 속임수다. 새로운 남성, 새로운 여성이 사회의 성적 제약으로부터 해방되었다 해도 지금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결혼은 지옥이다』 라는 책을 내고 있는 「캐더런·페루츠」 도 누구보다 전통적 일부일처를 무시하고 있지만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놀라운 새 결혼도 역시 지옥』이라는 후편을 낼 것 같다고 짐작해 낼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의 반항적 태도 자체에 대해서도 회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새로운 자유」의 잔인함을 지적하고 있는 야망 있는 여성이 자녀에게 애정을 쏟는다는 것이 이상하고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그러한 「새로운 세계」를 「페루츠」 는 인정하지 않는다.
더욱이 자녀를 「키부츠」에서 처럼 따로 키워야 한다는 주장의 「새로운 결혼」에 대해선 비판적이다.
어쨌든 미국에서의 「결혼」은 심각한 반작용에도 불구하고 조급하게 너무 빨리 변해 가고 있음엔 틀림없다. 이미 이혼이나 인공 유산 같은 것은 사회의 제약에서 벗어났으며 이혼 법은 바로 잠정적 일부일처를 시인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문제는 「멋진 신세계」에서의 「멋진 신 결혼」을 꿈꾸는 경향이 지나친 이상으로 해서 현재의 균형마저 비뚤어 나쁘게 바뀌지나 않을까 하는 위험성이다.
불가능한 이상만큼 무서운 것은 없으니까. <미 「어툴랜틱」지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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