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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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과연 이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의심을 하는 때가 많다. 서울의 교통망, 서울의 교육 기관들, 서울의 길, 서울의 방학 대책 등을 볼 때마다 의심이 난다. 이러한 사실과 기관은 시민을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시민을 위한 것이 아니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서울의 교통은 소수의 업자와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부유층을 위한 것 같다. 예를 들어 「버스」가 시민을 위한 것이 라면 승객의 편리와 안전을 무엇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로 「버스」의 운영은 매우 불편하게 만 되어 있다.
「버스」 정류장에서도 「버스」를 어디에서 타야 할지 알 수 없다. 같은 자리에서 서는 것이 아니어서 차가 오면 뛰어 가야 타는 것이다. 개문 발차는 보통이요, 심지어 노인이나 어린이가 타려고 할 때 밀어내며 그냥 가 버리는 것도 많이 보았다.
아침 출근할 때 빽빽하게 집어넣어진 손님들이 차장에게『그만 태워』라고 소리치지만 정원 보다 늘 2, 3배 태우는 형편이다. 「안전」 이라는 개념은 거리가 먼 것이다. 교통순경의 눈앞에서도「버스」 는 거의 마음대로 하는 것 같다. 분명히 경찰이 교통 처리를 못하는 것은 아닐텐데….
여기서 문제되는 것이 교통 제도이다. 「버스」 와 「택시」 가 서로 경쟁(전쟁!)하기 때문에 돈만 생각하게 된다. 승객의 편리는 물론, 그들의 생명도 관심거리가 못된다. 여기에 운전사의 입장이 난처하다. 노선을 한바퀴 돌아올 때 1분 늦게 도착하면 1백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그리고 차의 시간을 기록하는 사람들이 각 정류장마다 서 있다. 그래서 위험한 상태를 알면서도 운전사들은 난폭하게 운전을 하게 된다. 운전사가 항의를 하면 회사에서 아무 보장 없이 그를 해고한다고 한다.
정부 당국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이러한 업자를 위한 제도를 뜯어고치지 않으면 소용이 없을 것이다. 한국의 엄청난 사고율을 억제하지는 못할 것이다.
결국 서울의 교통은 시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타는 사람을 이용하고 무시하는 것이다.
교육계에도 비슷한 문제가 많다. 먼저 영리적인 교육기관을 하루바삐 법적으로 금지해야 한다. 그러나 학교의 담밖에도 문제가 있다. 교육에 공해를 끼치는 일이 많다. 그 중에는 학교 주변에 지저분한 가게나 도박 따위가 성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얼마 전에 시 당국에서 이러한 불미스러운 것을 다 제거해 주겠다고 하여 여러 학교에서 제거를 요청했으나 시에서 제거해 준 상태는 불과 며칠밖에 계속되지 못했다.
폐품 취급하는 업자나 공해를 일으키는 공장뿐만 아니라 길가에서 어린아이들을 유혹하는 도박꾼까지도 학교와 시청을 이길 정도의「백」 이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역시 교육기관과 교육자는 누구를 위한 것이 되는가? 방학 문제도 마찬가지다. 무서운 화재 사건이 여러 번 일어난 후에 방화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가? 몇 군데만 보면 다 알 수 있다. 몽땅 타 버린 반도 「아케이드」 의 안전 상태는 볼 때마다 떨린다. 다시 불이 나면 수십 명이 즉시 죽을 것이다.
출입구와 계단에 상점이 서 있고, 창문이 전부 철창으로 막혀 있으며, 사람이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복도가 불붙기 쉬운 물건으로 꽉 차 있다. 다른 백화점에서도 계단에서까지「카운터」를 두고 물건을 파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일류「호텔」의 새로운 방화 시설은 정면에 「로프」 몇 개를 옥상에서부터 걸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시민을 위한 것은 아니다. 역시 업자들의 편리를 봐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버스」 탈 때, 학교를 지나갈 때, 백화점에 들어갈 때마다 생각한다. 『과연 이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박대인 <감리교 신대 교수·철박·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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