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일·중공 악수의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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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전중·주은래 북경 정상 회담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동「아시아」의 역사에 전혀 새로운 장을 열기 시작했다. 청조 말에서 시작한 중국 봉건 사회의 해체와 명치유신이 발단시킨 일본 팽창주의의 중국 침략 시대서 거처 1억 일본과 8억 중공은 1세기에 걸친 오랜 적대 행위를 청산하고 「아시아」인으로서의 대국적인 화해의 악수를 나누었다. 이 사건이 「아시아」 전역에 파급시킨 입체적인 영향의 진폭을 분석해본다.
일본과 중공은 『9월29일을 기해 양국의 외교 관계 수립에 합의』했다. 이로써 「세계 정치의 제3극」과 「세계 경제의 제3강」은 반세기 너머 계속되었던 항쟁 관계에 일단 종지부를 찍었다. 이것은 또한 「닉슨」이 지난해 7월 세계를 미·일·중공·소·서구의 5대 영향권으로 분립시켜 세력 균형에 의해 지도해 나가자던 제안의 구체적 성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한 「데탕트」의 흐름만으로 받아들이기에는 한국의 입장이 너무 미묘하다. 지정학적으로 봐서 자신의 영향권 내지 「시큐리티·벨트」 (안전대)를 요구할 수 있는 일·중공·소련의 한 중간에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분단되어 있기 때문이다.
「닉슨」의 중공 방문 이후 한·미·일의 「남방 삼각 관계」와 북한·소·중공의 「북방 삼각 관계」는 냉전 시대의 날카로운 대립을 많이 부드럽게는 했다. 그리고 일·중공의 이번 국교 정상화가 이와 같은 해빙 기운에 촉매 작용을 할 가능성도 매우 짙은게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까지 모든 부문에 걸쳐서 굳게 다져져있던 「남·북방 삼각 관계」의 내부 질서가 크게 이지러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있다.
예를 들면 미·일 안보 조약, 한·미 상호 방위 조약, 한·일 기본 조약 등으로 골격이 짜여져 있던 「남방 삼각 관계」는 경우에 따라서 질적인 변화마저 각오해야 할 위험에 직면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65년2월 한·일 기본 조약이 체결될 당시의 상황은 지금과는 현격히 달랐다. 당시의 일본은 52년 「샌프런시스코」 강화 조약의 「극동 조항」에 따라 예컨대 한국전이 재발할 경우 일본 안의 미군 기지가 활용되는 것을 『승인 할 의무』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중공의 침략적 정책에 대해 미국과 밀접한 협의』 (65·1·13 「닉슨」-「사또」 공동 성명)를 하고 『중공의 침략 정책에 대해 미국 이상으로 불안의 염을 갖는』 (다음날 「사또」 연설) 자세였다.
말하자면 한·일 기본 조약은 이와 같은 분위기와 상황의 한 표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중공이 국교 수립에 합의한 지금은 상황이 매우 달라졌다.
예컨대 한국전이 다시 일어날 경우 중공은 북한과의 상호 원조 조약에 따라 개입의 권리와 의무를 갖는 반면 일본은 중립을 지켜야 할 의무를 진다. 그리고 법 이론만으로 따진다면 중립의 의무를 지키기 위해서는 주일미군 기지의 이용마저도 막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69년11월 「닉슨」-「사또」 공동 성명에서 『한국의 안보가 일본의 안보에 긴요한 것』임을 밝힌 이른바 「한국 조항」은 미묘한 「뉘앙스」의 변조를 일으킬지도 모른다.
물론 형식 논리만으로 끄집어낸 이와 같은 전망들이 반드시 현실화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이 말을 뒤집으면 현실화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는 얘기도 된다. 최근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남북한에 대한 등거리 외교 정책이 바로 그 증거이다.
한국을 「유엔」의 결의에 따라 『한반도의 유일 합법 정부』로 인정했으면서도 일본은 북한과의 각종 교류를 계속 증가시켜왔다. 「스포츠」 교류나 상사간의 교역은 민간 「베이스」니까 별문제라 치더라도 일본 정부가 만약 수출입 은행의 자금을 북한과의 무역에 쓰도록 허용한다면 북한을 「사실상의 교전 단체」로 승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일본 「매스컴」들은 멀지 않아 이와 같은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반관 반민 형식의 수출입 은행은 국제법상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따라 사태는 심각하게 변모 할 수도 있다. 교전 단체 승인을 한 제삼국은 교전 단체와 합법 정부의 전쟁을 「내란」으로 간주하고 동시에 중립의 의무를 지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일·중공의 교역량이 양적으로 급격히 팽창하거나 혹은 경제 협력 관계를 심화할 경우를 특히 우려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있었던 사회주의 국가의 경제 개발 「모델」이나 중공의 자력 갱생 정책, 4차례의 5개년 계획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이와 같은 우려는 아주 희박한 것 같다.
72년 3대지지 원단 사설을 기초로 판단한다면 71년 중공의 GNP는 1천3백20억「달러」이나 수출입 총액은 40억「달러」선에서 머무른다. 이것은 GNP에 대한 교역의 기여율이 3%임을 뜻한다.
71년뿐만 아니라 정부 수립이래 지금까지 중공은 GNP의 대외 의존도틀 4% 이상으로 한적이 한번도 없었다.
이것은 중공의 특징이라기보다 소위 자기 완결적 발전 「모델」을 지상으로 삼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보편적 특징이다.
연초에 발표된 미 양원 합동위 조사 보고서가 중공의 교역량 증가율을 5%로 전망한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일·중공 국교 정상화가 한국에 미칠 영향은 주로 정치적 차원에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남방 삼각 관계와 북방 삼각 관계의 대립을 군사적 대결로 단순화시키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 한국의 안보 체제는 새로운 시련에 부닥칠지도 모르기 때문에 「힘의 우위」가 가장 절실한 것이다. <홍사덕 기자>
(상) 한반도에 미칠 북경 성명 영향
(중) 소·중공 분쟁과 일본의 입김
(하) 미·일 동맹과 중공의 입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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