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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의 개별 거래가 가져올 결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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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일러스트=강일구]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중국 국방부가 지난달 23일 동중국해의 자국 방공식별구역(ADIZ) 확대를 발표함으로써 일본·미국·한국과 새로운 긴장을 촉발했다. 중국방공식별구역(CADIZ)은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 및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과 상당 부분 겹친다. 베이징의 이러한 일방적인 선언에 대해 서울은 강한 어조로 거부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난주 서울에서 열린 한·중 차관급 국방전략대화에서 들려온 소식은 걱정스럽기만 하다.

 CADIZ는 한국에는 대단히 골치 아픈 문제다. 이 구역에서 비행하는 모든 외국 민간·군용 항공기는 비행계획·무선통신·전파중계·외장로고 등의 확인 절차를 따르고 관제를 받아야 한다. 아울러 이제부터 베이징의 중국 외교부나 민항국에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려야 한다. 발표에 따르면 CADIZ의 관리는 중국 국방부가 맡으며 이들은 이곳을 지나는 항공기를 식별하기 위해 전투기를 출격시킬 권한이 있다. 중국은 자국이 선언한 CADIZ를 통과하는 비행경로에서는 물론 해당구역과 평행선을 이루며 비행하는(즉, 이 구역에 들어가지 않는) 항공기도 저지할 수 있다. 민간 항공사들이 비행을 미리 알리지 않는 편을 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이 구역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확인해주길 거부할 경우 아주 위험할 수 있는 중국의 비행 저지 행동을 불러올 수 있다.

 중국군은 이미 그 구역에서 Tu-154 정찰기 한 대와 Y-8 조기경보기 한 대를 동원해 항공 순찰을 시작했다. 그러자 이에 자극받은 일본은 F-15 전투기 2대를 동원해 이 구역을 통과하게 했다. 미국은 이전에 계획된 훈련의 일환이라며 B-52 폭격기 2대를 이 구역에 출격시켜 중국이 설정한 새로운 구역에 이의를 제기했다. 중국은 이번 CADIZ 확대가 일반적인 국제 관행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은 이 구역 확대에 대해 분명한 거부 입장을 밝혔다. 미국의 존 케리 국무장관과 척 헤이글 국방장관은 즉각 중국의 행동이 일방적인 데다 잠재적으로 영토확장 의도가 엿보이는 것이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헤이글은 특히 중국의 행동이 이 지역의 현상에 대한 변화를 의미하는 불안유발 행위라고 지적했다.

 한국은 이에 대해 똑바르게 대응해왔다. 한국 외교부와 국방부는 중국의 결정에 대해 항의했다. 한국의 문제는 중국이 이번에 확대한 CADIZ가 한국 최남단 제주도 남방의 KADIZ와 겹친다는 점이다. 동서 20㎞, 남북 115㎞에 이르는 이 겹치는 구역은 한국 공군이 이미 순찰활동을 하고 있는 곳이다. 중국이 확대를 선언한 영역에는 한국이 이어도라고 부르는 제주 서남쪽의 물속에 잠긴 바위가 포함된다. 중국어로 쑤옌자오(蘇岩礁), 국제적으로는 소코트라 록으로 불리는 이 바위는 역사적으로는 한국과 중국이 서로 자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속해야 한다며 논란을 벌여온 것이다. 한국은 2003년 중국의 반대에도 제주 마라도에서 149㎞ 떨어진 해저 바위 위에 무인과학기지인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를 건설했다. 한국 해군은 군사 작전지역에 이어도를 포함하고 있다.

 중국의 조치는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 정부와 중국 사이에 무르익어 가던 긍정적 관계에 찬물을 끼얹었다. 불과 몇 주 전 서울을 사흘간 방문했던 중국의 양제츠(楊潔<7BEA>) 국무위원은 한·중 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만드는 과정을 논의하기 위해 박 대통령과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윤병세 외교부 장관 등 다수의 한국 고위 관리를 만나 좋은 성과를 거뒀다. 지난 6월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성공적인 정상회담에서 두 지도자는 공동성명을 통해 다음 단계의 관계로 나아가는 데 합의했다.

 CADIZ와 관련해 한국이 중국과 ‘담판’하려던 희망은 지난주 한·중 차관급 국방전략대화에서 물거품이 됐다. 중국은 CADIZ에 대한 한국의 항의를 일축했다. 그러나 언론 보도를 통해 한국 측이 KADIZ와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 CADIZ를 재설정할 것을 중국에 제안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중국은 물론 이 제안도 거부했다. 그러나 이러한 언론 보도를 보고 하나 걱정되는 것이 있다. 한국이 다른 지역의 문제를 중국과 연결하는 것을 꺼린다는 점이다. 만일 베이징이 한국의 제안을 수락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 문제와 관련해 미국과 일본이 계속 항의하는데도 단지 KADIZ와만 겹치지 않도록 조절만 해준다면 중국의 이번 CADIZ 확대를 인정할 것인가? 이는 단기적으로는 현명한 처방일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는 한국 국익에 해가 된다.

 국제관계 이론을 보면 한 지역에서 신흥강국이 제국으로 확장하는 길은 개별 협상을 통해 더 작은 이웃 나라들을 서로 떼어놓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지역 내 어떤 세력도 이 신흥강국에 맞서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분할과 정복’ 전략이다. 지난주 한·중 차관급 국방전략대화에서 CADIZ와 관련해 한국이 했던 제안은 중국이 이 지역에서 더욱더 강한 영향력을 펼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는 방법이다. 이는 제대로 된 정책이 아니다. 베이징은 이러한 서울의 제안을 거부했다. 박근혜정부는 CADIZ 확대에 완강하게 반대 입장을 보이는 미국·호주·일본 편에 서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는 서울의 첫째 선택은 아니겠지만 영리한 장기 전략으로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 중국과의 개별 거래는 동맹관계에서 한국을 더욱 고립시킬 뿐이며 이 지역에서 중국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줄 뿐이다.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