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동북아 격랑 넘을 전략을 갖춰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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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발표로 갑작스럽게 긴장이 고조된 동북아 정세의 파고가 전에 없이 높다. 미·일과 중국은 당장 물리적 충돌도 불사할 것처럼 무력시위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이 우리의 그것과 중복되고 이어도 상공까지 덮은 때문에 한·중 간에도 미묘한 긴장이 흐른다. 그러나 미·일과 중국 사이의 갈등에서 우리가 설 자리는 넓지 않다. 안보적으로 미·일과 밀접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오히려 더 긴밀한 탓이다. 여기에 북한이라는 변수도 중국과 미·일 사이에서 쉽사리 방향을 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번 동북아 긴장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막상 맞닥뜨린 건 갑작스럽다. 그런 탓인지 정부는 이번 위기에 닥쳐 일부 우왕좌왕하는 모습도 보인다. 예컨대 우리의 방공식별구역을 이어도 상공으로 확대하는 문제가 이번에 표면에 부상했다. 그러나 정부가 오래 전부터 일본과 협상을 통해 확대하려 시도했지만 일본의 묵살에 포기했던 사안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확대할 수 있었다면 이번 중국의 조치에 보다 확고하게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번과 흡사한 성격의 사안들이 앞으로도 언제든 새롭게 불거질 것이라는 데 있다. 이미 문제가 되고 있지만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문제도 그중 한 가지다. 막상 미국이 노골적으로 일본 편에 서고 보니 우리의 입장이 불편해진 측면이 있다. 이 문제 역시 사전에 확고한 대응 방침을 만들어 가지고 있었다면 미·일 간 긴밀한 협력이 우리에게 압박으로 다가오는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정부는 동북아 정세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면밀하게 검토해 다양한 상황별로 대응책을 마련해둘 필요가 있다. 이를 토대로 사전에 우리의 국익을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서둘러 추진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의 조치는 물론 주변국의 어떤 조치도 역내 긴장을 고조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을 천명해둘 필요가 있다.

 한편 정부는 이번 방공식별구역 파장과 같은 긴장이 확산하지 않고 완화되도록 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 현 정부가 외교 안보 공약인 ‘동북아다자안보협력’과 같은 외교적 이니셔티브를 추진하는 것은 매우 긴요하다. 동시에 현안이 발생했을 때 적극적으로 개입해 중재하는 노력도 못지않게 필요한 것이다. 다만 자칫 미·일과 중국 사이에서 모두 배척당할 위험을 미리 고려할 필요가 있다. 매우 고난도의 외교적 능력과 예민하고 적확한 상황 판단이 있어야 가능한 일들이다.

 강대국들에 포위돼 있으면서 동시에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한국은 한마디로 ‘외교·안보적 딜레마’에서 벗어나기가 근본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충분한 사전 대비와 선제적 외교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딜레마가 한국의 생존과 번영에 덫이 되는 일은 막을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