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 인공 뼈·봉독 화장품 같은 게 우리 농업의 미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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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호 22면

김재수 경북 영양 출생. 경북고ㆍ경북대 경제학과 졸업. 행정고시 21회ㆍ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장·농촌진흥청장을 역임했고 2010년 8월부터 1년간 농림수산식품부 제1차관을 지냈다.

농장비 근대화와 농가 소득 증대.

[Biz Report] 창립 46주년 맞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김재수 사장

1967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전신인 농어촌개발공사가 설립된 원래 목적이다. 이후 aT가 걸어온 길을 보면 한국 농업의 변화상을 엿볼 수 있다. 70년대엔 농업 생산량 증대와 물가 폭등 방지가 주요 과제였다. 9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농업의 해외 진출 모색이 시작됐다. 99년 고려인삼·김치 캐릭터를 개발하고 2000년 해외 식품박람회 참가를 시작했고 2008년엔 한식 세계화 사업에 뛰어들었다. 1일로 창립 46주년을 맞는 aT의 다음 과제는 뭘까. 취임 2년을 맞는 김재수(56사진) aT 사장을 홍병기 경제에디터가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 사장은 “농업은 먹거리를 생산하는 일이라는 낡은 패러다임을 버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회사명에 ‘식품’ 두 글자 넣어 비전 강조
-aT가 46주년을 맞았다. 지난해 회사명을 농수산물유통공사에서 농수산식품유통공사로 바꿨는데.
“농업이 생산만으로 농민 소득을 올려 주고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그보다 가공·저장·유통·수출 같이 생산 이후 과정에 더 많은 노력을 쏟아야 부가가치가 높아진다. 이 단계를 식품으로 보고 강조해야 한다는 뜻에서 이름을 바꾼 거다.”

-이름만 바꾼다고 되는 일이 아닐 텐데.
“어려운 점이 그것이다. 아직 우리 조직·인력·예산도 생산 쪽에 80%가 치중돼 있다. 농촌 연구개발(R&D)의 초점도 생산 증대에만 맞춰져 있다. 쌀이 남아돌아 가는 데도 말이다. 이제 생산엔 20% 정도만 신경 쓰고 대신 포장을 어떻게 할지, 상품성을 어떻게 올릴지에 80%의 역량이 집중돼야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나 한·유럽연합(EU) FTA 때 국내 농업이 경쟁력을 잃는다고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현재 한·중 FTA가 협상 중인데, 우리 농업이 경쟁력을 잃지 않고 견딜 수 있나.
“한·중 FTA 역시 여타 FTA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전체에 가져올 경제효과 등을 감안하면 불가피한 선택이 될 것이다. 기존의 FTA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농업 분야 충격을 최소화하도록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우리가 보완대책으로 농업을 지원해 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자생력을 갖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중국에서 고추를 수입해 오면 그걸로 고춧가루·고추장을 만들어서 수출하는 식으로 보완해야 할 것이다.”

-식품 수출로 경쟁력을 키우자는 건가.
“중국의 식품 시장 규모가 1300억 달러에 달한다. 이제 중국인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만들어야 할 때다. 중국 사람들이 한국 관광 오면 명품을 싹쓸이해 가지 않나. 자국 식품에 대한 신뢰가 낮을 때 몸에 좋은 한국 음식을 내세워 공략하면 승산이 있다. 이미 한국산 홍삼이나 분유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산업화 여부가 관건이다.
“농업은 사실은 첨단 산업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의 한 벤처회사가 중국 약초 ‘팔각회향’에서 스타아니스라는 성분을 뽑아내 큰돈을 벌었다. 그게 신종플루의 치료약이 됐기 때문이다. 앞으로 새집 증후군, 아토피 같이 현대의학으로 고치지 못하는 것들을 농산물·자생식물로 고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곧 농업과 식품산업, 제약산업의 경계가 거의 없어질 것이다.”

-기존 업계들이 하기엔 어려운 일 아닌가.
“제약업계의 지식만으로도 한계가 있고 농업 연구자들의 머리만으로도 한계가 있다. 우리 옛 조상들은 이미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는 말처럼 약과 식품의 뿌리가 같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게 바로 창조경제의 동력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요즘 농학·의학 연구자들이 공동 연구해 낸 결과 중에 누에고치로 만든 인공 고막이 있다. 기존 인공 고막보다 인체 친화적이면서 비용도 적게 든다. 이제 이것을 발전시켜 인공 뼈를 개발할 단계다. 인공 뼈만 해도 세계 시장이 5조 달러에 달한다.”

-먹거리 생산에만 치중하지 말자는 것인가.
“맞다. 얼마 전 찰스 왕세자의 부인 카밀라 여사의 미용 비법이 공개됐었다. 케냐에서 공수한 벌침 속의 독 성분을 먹는다는 거다. 우리도 이미 봉독(蜂毒) 화장품을 개발했다. 이제는 먹는 농업에서 병을 고치는 농업, 바르는 농업, 입는 농업으로 바뀌어야 한다.”

-한식 세계화 얘기를 해 보자. 주미 한국대사관 농무관으로 일할 때부터 많은 애정을 쏟았는데.
“그게 10년 전인데 그 사이에 정말 많이 세계화됐다. 그동안 뉴욕에서 한식의 인지도가 9%에서 55%로 올라섰다. 우리 식품 수출이 지난 5년 사이에 2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도 한식 세계화의 영향 때문이다.”

- 그런데 최근 미국 현지에선 ‘낭만적인 버섯(romantic mushroom)’과 같은 엉터리 영어로 홍보했다고 비난을 받기도 했다.
“‘왜 고추장을 Gochujang이라 쓰지 않고 Red pepper paste라고 썼느냐’라는 식으로 지적하는 것에 대해선 제 생각은 조금 다르다. 한식 수출은 요리뿐 아니라 문화 전체를 수출하는 것이다. 테이블 장식부터 식기 디자인, 식당의 음악과 조명, 인테리어 같은 모든 요소가 박자를 맞춰야 하는 종합문화 수출이다. 작은 꼬투리를 잡아 전체를 다 폄하해 버리면 한식 세계화가 힘을 받을 수 있겠나?.”

가공식품으로 일류 농식품 키워야
-뉴질랜드는 키위, 프랑스는 와인 하는 식으로 각국마다 세계 일류의 농식품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한국에 스타 상품이 없다는 게 가장 안타깝다. 최근 눈여겨보고 있는 게 음료 시장이다. 한 중견기업이 알로에 음료로 연간 200억원이 넘게 수출을 하고 있다. 수출 품목을 1차 농산물에만 한정짓지 말고 이런 식으로 가공식품까지 확장시켜 나가면 우리도 곧 일류 농식품을 배출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농산물 소비자가격이 산지보다 너무 비싸니 직거래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꼭 그렇진 않다. 산지에서 바로 가져와 팔라는 건데, 그게 바로 대형마트의 시스템이다. 그런데 대형마트 농산물 가격이 저렴한가? 도매시장을 거쳐도 재래시장이 더 싸다. 학교 급식재료가 아니고선 전국 농산물의 절반 이상이 여전히 도매시장을 통해 거래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개선의 여지는 없나.
“직거래에 매달릴 게 아니라 도매시장 내의 문제를 좀 더 손봐야 한다. 상장 경매제도의 문제를 뜯어고쳐야 한다. 지금은 산지에서 올라온 농산물을 도매시장에서 중도매인이 낙찰 응시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물건이 조금만 남아도 가격이 확 떨어지고, 조금만 모자라도 가격이 확 오른다. 그래서 상장 경매제도에만 의존하지 않고 정가·수의 매매 비중을 늘리려 한다. 사전에 농산물 값을 정해 놓고 공급자·수요자를 연결시키면 가격 폭등과 폭락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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