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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에 만난 한·일 의원 130명 … 총회장은 싸늘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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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역사인식 문제로 한국과 일본 간에 냉기류가 흐르고 있는 가운데 양국 국회의원 13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일의원연맹 소속 여야 국회의원 30여 명과 일·한의원연맹 일본 국회의원 100여 명은 29일 오후 도쿄 나가타초(永田町)의 중의원 의원회관에서 합동총회를 개최했다. 총회가 열린 건 2년 만이다. 지난해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양국 관계가 급속히 경색되면서 35년 만에 처음으로 총회가 열리지 못했다.

 이날 총회장 앞에선 일·한의원연맹 간부들이 일렬로 서서 한국 의원들을 맞이하는 등 우호적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일부는 한국 국회의원들에게 큰 제스처를 쓰며 포옹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총회가 시작되면서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일본 참석자들이 덕담을 하면서도 ‘뼈’ 있는 발언들을 연이어 내놨기 때문이다.

 축사에 나선 이부키 분메이(伊吹文明·75) 중의원 의장은 “국제사회는 국제법의 질서 아래 성립돼 있어 두 나라 간 문제도 이 질서를 지키면서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두 나라 사이에 체결된 조약은 움직이기 힘든 법”이라고 주장했다. 위안부 문제는 물론 한국 법원에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을 연이어 내놓고 있는 것을 대놓고 꼬집은 것이다. 기조연설에 나선 가와무라 다케오(河村建夫·71) 일·한의원연맹 간사장은 “아베 총리가 헌법 개정을 추진하는 건 국민주권, 평화주의, 기본적 인권, 자유시장경제를 한 치도 흔들자는 게 아니다”며 “또 나라를 위해 한 몸을 바친 동포의 영령을 비는 것은 어느 나라건 다 하고 있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를 두고 한국이 반발하는 걸 겨냥한 발언이었다.

 예년의 한·일의원연맹 총회에서는 한국 측 의원들이 강한 발언을 내놓아도 일본 의원들이 정면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번 총회는 오히려 일본 의원들이 대놓고 한국에 대한 불만을 쏟아놓는 이색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한국 의원들은 점잖게 응수했다.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인사말에서 “‘과거의 반성’ 위에 선 미래지향적 관계를 어떻게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양국 국회의원들이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이 늘 ‘미래지향적 관계’를 주창하고 있는 것을 빗대어 ‘그 전제는 과거의 반성’이란 점을 못박은 것이다. 강창일 의원(간사장)은 “일본 내 분위기가 매우 안 좋은 데 놀랐다”며 “가히 한·일 관계가 최악의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이날 총회 개막행사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참석해 축사를 했다. 자민당 정권에서 총리가 직접 총회에 참석해 축사를 한 건 2004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이후 9년 만이다.

 아베는 한국 대표단을 따로 만나 “양국에 어려운 일이 있지만 의원연맹이 그동안 많은 일을 해왔듯 이번에도 활약을 해달라”는 덕담을 했다고 김태환(새누리) 의원은 전했다. 이에 황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도 한·일 관계를 염려하고 있다”며 “한국과 일본이 중심이 돼 협력하는 동북아 평화구상, 나아가 한국·일본·중국이 공동교과서를 만들자는 박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한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특별한 답을 하지 않았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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