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5)|월남 「스케치」 2주 5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다음날 화가단은 A, B조로 나누어 일부는 백마사단으로 다시 내려가고 일부는 맹호사단에 남게 되어 「스케치」 내용의 「스케줄」에 따라 주요 작전, 일반 작전, 군수 지원 등을 「스케치」하기 위해 약 1주일 동안 입대하게 되었다.
나는 맹호사단에 떨어지게 되었다.
매일 헬리콥터를 타고 전방에 나가서 고되긴 했지만 즐거운 「스케치」를 많이 했다. 「스케치」를 하면서 전차를 따라가는 「드릴」이 말할 수 없이 좋았고 전진이 휘날리는 열사에 핀 「빼방쉐」라는 진분홍빛 꽃이 유정하기만 했다.
또 우리들을 위해 더위에 무거운 방탄조끼까지 걸친 사병들은 일부러 모델이 되어 주어 움직이지 않고 오래오래 포즈를 취해 주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카메라」를 멘 정형기 소령은 전라도 사투리로 『이 자석아, 시방 적이 오고 있단 말다. 더 쌍 찡기리고 긴장한 시늉하란 말다. 엥, 안그라냐 이 자식아!』 마치 연극 연출을 하는 양 사병에게 포즈를 지시해 주는데 그게 스케치하는 사람들에겐 활력소가 되어주었다.
우리는 식사를 사단장과 같이 할 때가 많았다. 사단장은 순수한 군인 정신에 투철한 분이고 스포츠 만능 선수에다 독실한 신자요 참 매력 있는 분이었다. 그래서 우리들을 소년소녀의 기분으로 되돌아가게 해주기도 했다. 이곳 「스케줄」이 끝나자 우리 일행은 「헬리콥터」를 타고 「고보이」 평야가 펼쳐 보이는 최전방 1연대 2중대로 갔다. 도하 작전을「스케치」하기 위해서다.
「고보이」 평야의 지평선에는 「푸캇」산이 있는데 「푸캇」은 「베트콩」의 소굴로 유명한 곳이라 했다.
중대 본부는 「바나나」 나무와 몇 종류의 열대수에 푹 파묻혀 있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서 도하 작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철모에다 나무 잎새로 위장한 장병들이 「콘도라」 같은 배를 타고 부평초가 핀 강물을 건너가는 것이 보였고, 혹은 목까지 물 속에 잠그고 강물과 부평초를 헤치며 걸어가는 병사도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포 소리가 두번 울려왔다. 중대장의 눈초리는 날카롭게 마늘모지더니 긴장했다. 그러나 적의 발포가 아님을 알고 긴장은 금새 풀렸다.
그런 전방에서 「스케치」를 하는 나는 하나도 무섭지가 않을 뿐더러 그저 포 소리와 함께 시원하게 휴식이라도 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글·그림 천경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