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지금은 국가의 안위를 걱정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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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반도 주변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영토와 과거사에 얽힌 한·중·일 갈등에 역내 주도권을 둘러싼 미·중 경쟁 구도가 겹치면서 동북아 긴장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다. 일본과 영유권 분쟁 중인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가 포함된 동중국해 일대를 중국이 자신들의 방공식별구역으로 선포하면서 중·일 갈등은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사소한 오해나 판단 착오가 순식간에 무력충돌로 비화할 수 있는 엄중한 상황이다. 미국이 베이징의 조치를 자국의 이익과 직결된 중대한 문제로 받아들이면서 미·중 갈등도 표면화하고 있다. 미국은 전략폭격기인 B-52 두 대를 사전통보 없이 중국이 선포한 방공식별구역으로 급파하는 무력시위까지 벌였다.

 한국으로선 당장 이어도가 발등의 불이다. 실효적으로 관할하고 있음에도 이어도는 한국의 방공식별구역에서 빠져 있다. 이어도가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이 새로 선포한 방공식별구역에도 포함되면서 3국 간 갈등 구도가 한층 복잡해졌다. 정부는 우리의 방공식별구역을 이어도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경우 중국·일본과의 충돌이 불가피해진다. 일본의 방공식별구역을 독도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벌써 일 정치권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중국이 서해에 대해서도 방공식별구역을 확대하는 경우다. 서해상 방공식별구역이 중국과 겹치게 될 경우 우리의 안보에 심각한 제약이 우려된다. 한·중 관계에도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다.

 영토 주권에 관한 한 누구도 양보가 어렵다. 현상 유지를 전제로 갈등을 완화하고 관리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 동북아에는 과거의 원한과 민족주의 감정에 국민적 자존심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고도의 외교력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국익을 지켜야 하는 우리로서는 현명하고 냉철한 외교가 필수적이다.

 이 점에서 박근혜정부의 대응은 실망스럽다. 정상 간 대화조차 없는 한·일 간의 극단적 대치 상태가 장기화하면서 미국의 태도에도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군사적 역할 강화를 용인하는 등 미·일 관계는 급속히 강화되고 있다. 한·미 관계가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가운데 이어도 문제 등으로 한·중 관계까지 삐걱거린다면 한국은 심각한 외교적 고립에 빠질 수 있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지 열 달이 넘었지만 여야 정치권은 댓글과 퇴행적 종북(從北) 논란의 늪에 빠져 서로를 향한 증오의 삿대질만 계속하고 있다. 집안 싸움에 정신이 팔려 밖에서 밀려오고 있는 높은 파도를 돌아보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대한민국이란 공동체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대통령 자신부터 비상한 상황인식을 갖고 국가의 운명과 안위를 챙겨야 한다. 더 이상 소모적 정쟁에 매달려 있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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