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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가지 않던 길 개척 … 틀 깨는 창조 경영 이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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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창의개발연구소가 장애인들을 위해 개발한 안구마우스 ‘아이캔(eyeCan)’을 시연하고 있는 모습. 전신마비로 눈동자만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진 삼성전자]

#1. 이달 4일 프랑스 파리의 프랑스경제인연합회(MEDEF)에는 한국과 프랑스의 경제계 인사 250여명이 모였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MEDEF가 양국 기업의 창조적 협력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이 자리에서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은 부유식 발전플랜트(BMPP)의 건설을 제안했다. 부유식 발전플랜트는 말 그대로 떠다니는 발전소다. 바지선을 이용해 바다와 강에서 움직이면서 발전을 하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BMPP는 섬처럼 전력 공급이 어려운 지역이나 급하게 전기가 필요한 곳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며 “프랑스의 우수한 과학 기술과 한국의 제조업이 결합하면 어려울 게 없다”고 강조했다.

#2. “지방자치단체도 창조경영 기업을 우대하고 기업가 정신이 발휘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전수봉 대한상공회의소 조사1본부장이 지방 기업의 창조경제 실태를 조사한 후 한 얘기다. 대한상의가 올 7월 지방 기업 400곳을 조사한 결과, 93.6%가 “창조 경제가 미래 생존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답했다. 10곳 중 6곳은 구체적으로 산업간 융·복합이나 기술 혁신 등에 나설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새로운 미래를 찾기 위한 이들 기업의 관심사는 기술혁신(43.8%), 산업간 융합(24.2%), IT와 SW 접목(15.8%), 디자인 콘텐트 강화(13%) 등 이었다.

 낯설었던 창조 경제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해외에서도, 지방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대기업들도 창조 경제를 통해 미래 성장 동력을 찾아가고 있다. 도전적으로 미래 산업에 뛰어든 기업일수록 더 열정적이다. 대표적인 부문이 친환경 사업이다. 현대자동차는 수소연료전지차(FCV)를 처음으로 양산한 업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3월부터 울산에서 생산 중인 투싼ix FCV는 조만간 미국 시장에 진출할 예정이다. 당장은 리스 방식이지만 앞으로 일반 판매에도 나설 계획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개척해가기 위해선 창의적 발상과 창조적 경영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전기차 분야에서도 한국 기업은 빼놓을 수 없는 위치에 섰다. LG화학은 전기차 배터리에선 세계 1위다. GM·르노 등 세계적 자동차 업체가 이 회사의 배터리를 쓴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틀을 깨는 창의력으로 시장의 판을 흔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삼성SDI는 신재생 에너지 산업과 짝을 이뤄 성장중인 전력저장장치(ESS)사업에 공을 들이고 았다. 삼성SDI 측은 “전체 매출에서 신사업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을 2020년까지 72%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완전히 다른 기업이 되는 셈이다. 한화그룹은 독일 큐셀을 인수하면서 종합 태양광 업체로 성장해가고 있다. 한화큐셀의 셀 생산능력(연간 2.4GW)은 세계 3위다.

 이런 성과는 그냥 생기지는 않는다. 효성은 최근 제 2의 나일론이라 불리는 ‘폴리케톤’ 을 상용화했다. 10년간 수많은 실패와 막대한 연구비(500억 원)를 투자한 결과다. 효성은 이 제품과 관련된 출원·등록한 특허는 국내 133건, 해외 27건에 이른다. 아모레퍼시픽은 서구 업체는 엄두도 낼 수 없는 한방화장품 ‘설화수’로 빅 히트를 쳤다. 전통 한의학과 아모레퍼시픽의 연구개발이 결합된 결과다. 일하는 방식을 확 바꿔 창조적 아이디어를 끌어내기도 한다. 삼성그룹이 2010년 만든 ‘창의개발연구소’가 대표적이다. 아이디어가 채택된 직원은 업무에서 완전히 벗어나 최대 1년까지 아이디어를 키우고 구체화하는데 시간을 쓸 수 있다. 장애인용 안구마우스, 이동식 태양광 충전 영화관 등이 이렇게 해서 나왔다.

 전자·통신업체는 창조경제의 선봉장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SK텔레콤이 개발한 정보통신기술(ICT) 솔루션인 ‘마이샵(MyShop)’은 재래 시장 상인도 태블릿PC 하나만 있으면 백화점 빰치는 고객 관리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마이샵이 적용된 서울 중곡제일시장은 ‘창조 경제의 1번지’로 불리기도 한다. KT는 신용카드·방송·의료 분야 등을 활용해 이종 산업간 융합을 하고 있다. 연세대 의료원과 손잡고 진료 기록을 축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맞춤형 의료에 한발 더 다가서는 식이다. ICT를 활용한 빌딩 에너지 관리시스템은 새로운 수출 산업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창조 경제의 융합은 단순히 기술과 기술이 만나는 것 만이 아니다. 창조 경영을 매개로 기업과 문화가, 기업과 기업이 만난다. 유통 기업인 신세계그룹은 ‘복합쇼핑몰’을 통해 미래 유통 혁명을 꿈꾸고 있다. 2016년부터 개장하는 하남·인천·대전·고양 등의 10여개 교외형 쇼핑몰에선 쇼핑은 물론이고 레저·외식·문화 등을 한번에 해결할 수 있다. CJ그룹은 한국 영화의 산업화를 이끌고 있다. 1999년 3000억 원 수준이던 국내 영화시장은 CJ그룹의 투자와 영화인들의 창조적 작품 활동에 힘입어 1조2000억 원 규모의 시장으로 성장했다. ‘비비고’를 통해 한식을 세계의 식품 산업으로 브랜드화하고 있는 곳도 CJ그룹이다.

 삼성SDS는 재래시장과 만나고 있다. 풍납시장 상인회와 손잡고 ‘디지털 사이니지’를 시장 입구에 설치했다. 터치 스크린을 이용해 점포 위치, 대표 상품, 할인 행사, 배달 여부 등을 한번에 알아 볼 수 있다. 포스코는 벤처기업과 만나고 있다. 창업 기업의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아이디어 마켓 플레이스’를 통해서다. 이 프로그램은 창업 기업의 아이디어와 투자를 연결시켜주는 장터 역할을 4년째 하고 있다. 지금까지 41억7000만원의 투자가 이뤄졌다. 창조 경제는 일자리도 만든다. 현대차의 FCV 사업은 2018년에 9000여명의 고용증대와 1조7000억 원의 생산 유발 효과를 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효성이 연산 5만t 규모의 폴리케톤 공장을 돌리게 되면 고용 창출 효과는 8700여명에 이른다.

 아직 부족한 부분도 있다. 대한상의의 지방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선 투자자금 부담(47.1%), 내부 공감대 미흡(15%), 개념에 대한 이해 부족(12.4%), 관련 제도와 인프라 미비(9.9%) 등이 창조 경제의 난관으로 꼽혔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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