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래은행 바꾸면 월급·공과금 자동 이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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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주거래은행을 바꾸면 계좌와 함께 급여와 각종 공과금 이체도 자동으로 새로운 계좌로 넘어가는 ‘계좌이동제’가 2016년 도입된다. 은행 간 금리·수수료 경쟁을 촉발시키기 위한 장치다. 경쟁 촉진과 함께 우리은행 매각으로 국내 은행시장을 3~4개 선도은행 중심의 ‘유효경쟁체제’로 재편하겠다는 게 금융당국의 구상이다. 치매·간병 서비스를 보장하는 종신건강보험상품 등 100세 시대를 대비한 새로운 금융상품도 등장한다. 27일 금융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의 ‘금융업 경쟁력 강화방안(금융 비전)’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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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나온 금융 비전은 새 정부의 금융 청사진이다. 과거보다 눈높이가 확 낮아진 게 눈에 띈다. 과거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금융 허브’, 이명박 정부의 ‘글로벌 플레이어’등 화려한 수사가 전면에서 사라졌다. 대신 ‘내실 다지기’ ‘실현 가능한 과제’ 같은 문구가 강조됐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산업으로서의 금융에 대한 회의적인 목소리가 커진 영향이다. 최근 동양사태와 잇따른 금융사고도 금융당국을 조심스럽게 만든 요소다. 업계 또한 저성장·저금리가 지속되면서 성장보다는 생존이 고민인 상황이다.

신제윤

 다만 ‘비전’인 만큼 최소한의 목표는 제시됐다. 7% 수준에서 정체된 금융업의 부가가치 비중을 향후 10년 내 10% 선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이것 또한 ‘몸집 키우기’로 해석되는 걸 누누이 경계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이날 “금융업이 성장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내실화와 인식의 대전환을 통해 기존 시장과 영업행태에서 완전히 탈피해야만 이룰 수 있는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총체적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출구’로 제시된 건 ‘경쟁’, 그리고 ‘100세 시대’다. 계좌이동제도는 대표적인 경쟁 촉진책이다. 잘만 되면 소비자선택권도 넓어지고, 은행의 서비스 질도 한층 개선될 것이란 기대다. 금융위 관계자는 “현재 우리 은행들은 숫자만 많지 차별화된 영업방식이나 전략이 없어 제대로 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면서 “우리은행 매각과 경쟁 촉진의 결과로 은행 간 우열이 가려지면 시장이 3~4개의 선도은행 중심의 유효경쟁체제로 재편될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고만고만한 규모의 업체들이 난립해 있는 금융투자업에는 진입·영업 규제를 풀고, 인수합병(M&A)를 촉진하는 방식으로 경쟁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보험사에는 해외 환자를 국내에 유치하는 사업을 허용해 새로운 수익원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100세 시대에 맞는 다양한 신상품 개발’도 핵심적인 경쟁력 강화 방안으로 제시됐다. 우리 경제의 위기 요인인 고령화를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삼겠다는 점에서 일종의 역발상이다. 보험금 대신 간병이나 치매 돌봄 서비스를 보장하는 종신건강종합보험이 대표적이다. 공적·사적 연금 가입 상황을 조회하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인프라 격인 종합연금포털은 내년 말 구축될 예정이다. 개인연금 납입을 중도 포기하지 않도록 10년 이상 가입 땐 수수료를 할인해 주고, 밀린 보험료를 한꺼번에 내는 대신 1회분만 내면 계약이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제도를 고치기로 했다.

 금융사의 해외진출에도 ‘선택과 집중’ 전략이 도입된다. 신 위원장은 “나가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닌 긴 안목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 우리가 강점을 가진 틈새분야에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시아 신흥국 중심으로 기업과 동반 진출하고, 부실채권정리 등 경쟁력 있는 분야에 집중하겠다는 얘기다. 문제는 추진력이다. 금융연구원 김우진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비전은 현실적인 전략에 집중하고 디테일에 신경을 쓴 게 특징”이라면서 “다만 연금 활성화 등은 규제 권한이 다른 부처에 있거나 국회의 법개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이를 실현시키기가 그리 만만치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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