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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철 일행 밀항 뒷이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북에서 온 손님은 서울에서의 4일을 조용하면서도 부산하게 보냈다. 27년만에 서울땅을 밟은「북의 손님」은 지난5월29일 판문점에서 통일로를 거쳐 서울에 들어왔다.
말끔히 손질된 통일로를 곧장 지나 서울에서는 사직터널-안국동 네거리-비원을 거쳐 영빈관에 숙소를 정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아무도 그가「북한부수상 박성철」임을 눈치채지 못했다. 비밀경호를 지시받은 경찰들도 이들의 통과를 몰랐다는 뒷소식.
「북의 손님」은 영자관애서 여장을 풀고 첫날밤을 영빈관의「스테이지」에서 당국이 극비리에 배운「소」를 보고, 국내인기가수인 「패티김」나훈아 박재난 장미화 은방울자매 등이 부르는 민요와 흘러간 옛추억의 구성진 가락을 들으며 서울의 첫밤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남과북」끼리 27년만의 단결을 잠시 푼 하룻밤. 저녁 7시.
이날 밤「스테이지」는 인기 아나운서 고모양의 사회로 흘러간 가수, 「톰·싱거」들이 참석했고 4중창단의「백· 코러스」, 이봉조악단의「줄· 맴버」20명이 시종 밴드를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장내는 어두운 룸·라이트였으나 가수들의 어느 누구도 「손님」이 누구인 줄을 알지 못했다. 그저 귀한 접대손님이려니 하고.
『눈물젖은 두만강』 『황성옛터』 등 주로 흘러간 옛추억의 노래가 불러졋다. 김정구씨의 노래가 끝나자 어두운 객석에서는『김선생 실물은 처음보지만 안 늙었구려』라고 들려왔다. 화애로운 웃음소리가 들렸고 가수들이 노래를 마칠 때마다 박수도 나왔다.
밤9시가 가까워 지자 객석에서는 간간이 유쾌한 웃음소리가 들러오고 글라스를 맞 부딪치는 소리도 잇달아 들려왔다.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선명회 합창단이 「아리랑」을 끝냈을 때 『여러분 가운데는 임을 버리고 오셔서 발병이 나신 분 안계신가요?』라고 사회가 말해 객석의 손님들을 한바탕 웃겼다.
「쇼」는 박재난의 『산넘어 남촌에는』, 『목포의 눈물』에 이어 선명회무용단의 고전무용 순서로 점점 흥겹게 진행됐다.
밤 10시쯤 「패티김」이 마지막 순서로 『서울의 찬가』를 부르자 객석에서 앙코르를 요청, 다시 『사랑의 맹서』를 더 불러야 했다.
「쇼」가 끝나기 직전 룸·라이트가 잠깐 켜졌으나 워낙 갑작스럽게 꺼져버려 손님들의 모두 정확히 볼 수 없었다.
북에서 온 손님은 지난 5월30일 점심식사를 서울 중구에 있는 24층「그릴」에서 한 것 같다고 한다. 서울 명동과 남산, 제1한강교가 한눈에 보이는 T호텔의 정상,「그릴」동쪽 맨끝에 자리를 예약한 손님일행은 불란서식「메뉴」로스트·비프 아피타이즈의 풀·코스에 맥주를 반주로 곁들였다는 소문도 났고 남산 팔각정을 넘어 본 것 같다고도 한다.
조용하게 점심식사를 마친 일행은 2병 내지 3병씩 마신 2홉들이 병맥주에 약간 얼굴이 상기되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생각하면 박성철 같았다는 이는 식사를 끝내고 한 종업원에게 『서울사람들은 항상 이렇게 먹느냐』고 말을 건넸는데 『2, 3일에 한끼 정드는 쇠고기를 먹는다』는 종업원의 대답에 『허, 허』 하고 웃음을 웃었다는 것이다.
손님은 또 이날 낮 최두선 적십자사 총재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손님들은 또 종로에 있는 모 한식요정에서 한식을 들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님을 맞은 오정직원은 『그 일행인지 누군지 확실치는 않지만 5월 말쯤 조용한「파티」가 몇차례 있었던 것 같다』고만 했다.
손님은 서울거리와 강변도로를 달리고 여의도 아파트까지 살피며 활기차고 자유스런 모습을 보기도 했고 어쩌면 일류백화점을 살펴 우리상품의 우수한 질을 목격하기도 한 것 같다고 한다.
북의 손님은 서울올 떠나는 날 강변1로를 거쳐 여의도 윤중제를 한바퀴 드라이브하면서 아파트를 구경했다고 하며 어떤이는 우리 고위당국의 지시로 안내해서『저들에게 우리가 숨김이 하나도 없음』을 보여주었다는 말도 들렸다.
아뭏든 그 사람들이 서울의 밤과 낮을 4일 동안 지내며 우리 생활모습의 구석구석까지 살피고 「자유가 귀하다」는 것을 마음 구석에 새기고 돌아간 것은 틀림없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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